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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베레모 교체 차질 빚자 기준 낮춰 불량품 2만개 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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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육군이 쉽게 찢어지고 보풀이 생기는 불량 베레모를 일선 장병에게 보급한 것으로 감사원 조사 결과 드러났다. 사진은 지난달 4일 충남 논산시 연무읍 육군훈련소 수료식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장병들이 쓰고 다니는 베레모. 어쩐지 보풀이 잔뜩 일고 싸구려 티가 난다 했더니 결국 부실 군납(軍納)임이 드러났다. 육군이 보풀이 잘 일고 쉽게 찢어지는 불량 베레모를 병사들에게 지급한 사실이 감사원에 적발된 것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국방부, 육·해·공군 본부, 국방기술품질원 등 7개 기관의 ‘2008~2011년 피복류 사업체계와 구매실태’를 감사하면서 이 같은 부실 군납을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 앞등이 떨어지고 물이 새는 신형 전투화에 이어 불량 베레모까지 군 납품의 구조적 문제는 심각했다.

 육군은 2010년 6월 야구모자 모양의 전투모를 베레모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국군의 날(10월 1일)에 맞춰 전 육군 장병에게 베레모를 지급한다는 계획으로 지난해 7월 2개 업체에 생산을 맡겼다. 2개월 뒤 국군의 날을 한 달 앞두고 계획이 틀어졌다. A사는 병사용 베레모 51만8947개를 생산하기로 계약해 놓고는 3%인 1만6000개만 납품했다. 생산설비가 부족하다며 아예 납품을 포기한 것이다. B사가 만든 베레모는 장교용 5992개만 정상품이었고, 병사용 10만2295개는 규격에 못 미치는 불량품이었다.

 국군의 날 장병들에게 베레모를 지급하려던 계획이 어그러지자 육군은 지난해 9월 5일 ‘베레모의 공급이 조기에 이뤄질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 달라’고 방위사업청에 요청했다. 육군·방위사업청과 국방기술품질원이 선택한 ‘특단의 조치’는 베레모의 품질 기준을 낮추는 것이었다. 특전사 베레모와 같은 수준의 품질을 유지해야 하는데도 필링(보풀) 방지 기준과 인장·파열 강도(재료가 견딜 수 있는 힘의 세기) 등 규격을 대폭 완화했다. 불량품이라도 빨리 만들어 지급하자는 궁여지책이었다는 게 감사원 지적이다.

 결국 폐기 처분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던 2만2295개 불량 베레모까지 합격품으로 둔갑했다. 육군은 불량 베레모를 납품한 B사의 계약금을 규정에 따라 깎아야 하지만 현재까지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군 납품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비슷한 사태가 반복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기준 육·해·공군에서 피복류 구매요구서(제품 규격 등 납품 기준을 정한 문건)를 담당하는 38명 가운데 10년 넘게 이 업무를 맡았던 사람이 1명에 불과할 만큼 전문인력이 부족했다. 2010년 7월에서 2011년 10월까지 작성된 구매요구서 56건을 감사원이 조사했더니 과거 문서를 반복해 사용하는 바람에 이미 폐기된 규격을 적용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감사원은 국방부가 장병들에게 피복류 만족도 조사를 하고도 불만 사항을 실제 납품 과정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정 업체가 군 의류용품을 독점 공급하는 것도 문제였다. 감사원은 “육군 정복, 근무복 등 13개 품목을 1개 업체가 독점하고 있다”며 특히 “육군 여름·겨울 운동복과 사각팬티, 방한양말은 기업 1곳이 물품량의 90%를 공급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불량 베레모 문제를 일으킨 육군준장 C씨를 징계하고, 관련된 국방기술품질원 직원 3명을 문책하라는 결정을 지난 16일 내렸다. 또 군 납품업체를 선정할 때 보훈·재활단체에 수의계약(입찰 경쟁 없이 기준에 맞춰 임의로 계약업체 선정) 등 혜택을 주고 있는데, 감사원은 이들 기업의 장애인·상이군인 고용 인원은 미미하다며 관련 제도를 정비하라고 방위사업청에 요구했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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