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미 FTA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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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다음 달 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다. 협상을 개시한 지 5년9개월 만의 일이다. 야당과 반대단체들은 여전히 “재재협상을 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 FTA는 이제 논쟁의 영역에서 대응의 영역으로 접어든다. 이미 ‘한·미 FTA 10년의 경제효과’ 전망치는 수없이 나와 있다. 국내총생산(GDP)이 5.66% 늘고, 취업자는 35만 명 증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측치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축복이 될 수도, 끔찍한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속된 말로 ‘쫄지 마’다.

 이미 한·칠레 FTA는 큰 효과를 낳고 있다. 한·유럽연합(EU) FTA는 유럽 재정위기 속에서 대(對)EU 교역에 튼튼한 받침목이 되고 있다. 돌아보면 우리는 찬란한 개방의 역사를 갖고 있다. 1994년 가전(家電)시장을 개방했지만, 이제 한국산 가전제품이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98년 일본 대중문화의 빗장이 풀리자 “문화 식민지가 된다”는 비난이 비등했다. 하지만 한류(韓流)가 아시아를 휘젓자 일본 극우세력들이 “K팝의 노예로 전락했다”며 열을 올린다. 이뿐 아니다. 스크린 쿼터 축소와 유통시장 개방도 마찬가지였다. 대외개방 때마다 공포감이 앞섰지만, 우리는 언제나 보기 좋게 뒤집기에 성공했다.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가 결심하고, 이명박 정부가 마무리한 작품이다. 재협상에서 가장 많이 후퇴한 분야가 자동차다. 하지만 어제 서울 증시에서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주가가 가장 많이 올랐다. 시장만큼 냉정하게 경제 효과를 따지는 곳은 없다. 따라서 야당이 집권할 경우 한·미 FTA를 폐기하겠다는 편지를 미국에 보내고,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쟁점으로 삼겠다는 것은 경제 논리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정치공세나 마찬가지다. 물론 농업과 제약·서비스 분야는 미국에 밀린다. 하지만 비교열위 분야를 언제까지 온실 속의 화초로 키울 수 없다. 농업도 피해지원금인 21조원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좌우될 것이다.

 우리가 전방위로 FTA를 추진한 것은 단지 시장선점(先占)을 위한 포석은 아니다. FTA는 본질적으로 경제동맹이지만 외교·안보에도 복합적 이익을 가져다 주기 마련이다. 상호 경제적 이해관계가 두터워지면 지정학적 위험과 코리아 디스카운트(안보 위험으로 한국 기업의 시장가치가 저평가되는 현상)도 자연스럽게 완화될 것이다. 정부가 한·중 FTA를 서두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 교류와 동아시아 지역 안정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선택”이란 이 대통령의 언급은 의미심장하다.

 한·미 FTA 협상은 가시밭길을 걸어 왔다. 광우병 촛불집회의 유탄을 맞기도 했고, 재협상까지 가는 진통에 휘말렸다. 협상타결 뒤 무려 4년10개월 만에 발효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 우리 앞에는 한·중 FTA와 한·일 FTA라는 큰 산이 남았다. 정부는 한·미 FTA의 쓰라린 경험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깔끔하고 균형 잡힌 협상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전 세계의 60%가 넘는 경제영토와 자유무역을 하게 된다. 자랑스러운 대외개방의 DNA를 되새기며 자신 있게 걸어나가야 한다. 다시 한번 얼마나 슬기롭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와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