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 대통령 해명, 진심을 느낄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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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친인척과 측근 비리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정말 가슴이 꽉 막힌다. 화가 날 때가 있고, 밤잠도 설친다. 국민께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국민의 분노를 사는 바람에 퇴임 후 이주 계획을 백지화했던 서울 내곡동 사저(私邸)에 대해선 “제가 살 집인데도 소홀히 했다. 제가 챙기지 못한 게 이런 문제를 일으켰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직접적인 사과의 표현을 쓰진 않았지만 평소 대통령의 화법으로 미뤄볼 때 가장 진솔한 사과 표시”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주장처럼 생각하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이 대통령은 친인척·측근 비리와 관련해 화가 나고 답답한 가운데 국민에겐 면목이 없다는 정도의 심경을 밝혔을 뿐 진심 어린 사과는 하지 않았다고 본다. 사저 문제에 대해서도 잘 챙기지 못했다는 불찰(不察)을 언급했을 뿐이어서 결국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가 됐다.

 이 대통령은 친인척과 측근 비리, 사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서 2008년 겨울 가락시장에서 만났던 박부자 할머니 이야기를 한참 했다. 할머니가 “매일 대통령을 위해 기도한다”며 위로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정부가 일을 많이 했고, 국위를 선양했다고 주장했다. 경제위기도 세계에서 가장 빨리 극복했다고 강조했다. 이런 자랑을 실컷 하고 나서 “국민께 할 말이 없다” “챙기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 태도는 국민을 실망시키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대통령 친형 주변에서 비리가 터졌고, 정권의 실세들과 청와대 고위 인사들의 부패·비리가 잇따라 발생한 데 대한 대통령의 반응치곤 너무나도 무성의한 것이다. 이래선 국민의 울화를 돋울 뿐 진정시킬 수 없다. 편중인사 논란과 관련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일할까를 생각한 것이지 의도적으로 특정 학연·지연을 따지지 않았다”는 이 대통령의 해명 역시 국민 정서와는 큰 괴리가 있다. 이 대통령은 이제라도 민심이 뭘 원하는지 구도(求道)하는 마음으로 정확히 살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