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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거장 '빔 벤더스' 관객들과의 대화

중앙일보

입력

〈밀리언 달러 호텔〉이라는 신작을 들고 이번 부산영화제를 찾은 세계적 거장 빔 벤더스는 7일 저녁 그의 영화가 상영된 뒤,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를 만나기 위해 자리를 가득메운 관객들 특히 멀리서 부산을 찾은 많은 영화학도들과 팬들로 밤늦은 시간까지 그 열기는 대단했고 그들의 질문 하나하나에 메모까지 해 가며 성의껏 답변하는 빔 벤더스의 모습도 과연 거장다웠다.

빔 벤더스 감독은 1984년 〈파리,텍사스〉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1987년 〈베를린 천사의 시〉로 역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세계적 거장으로, 뉴 저먼 시네마의 대표적 감독이다.1976년 독일 문화원이 주최한 '뉴 저먼 시네마 영화제'의 게스트로 한국을 방문한 이래 23년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당시 한국의 열혈 영화청년들과의 만남이 인상 깊었는지 이번 방문도 그 인연으로 이루어졌다는 후문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 나타난 공간,음악,시적인 요소 등에 대한 질문에 성실히 답변하면서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변화 가능성을 끊임없이 제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영화인들의 임무"라고 말했다. 특히 "시적 영감으로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독일 통일을 예견하는 〈베를린 천사의 시〉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면서 "한국은 외형적 흡수통일에 그친 독일과 달리 진정으로 하나되는 역사적 통일을 이루길 바란다"고 말해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빔 벤더스는 자리를 가득메운 열성적 관객들, 당신을 경배하는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예비 영화감독과 서툰 독일어로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영화학도들로 인해 적잖은 감동을 받은 듯했다. 정해진 시간보다 훨씬 길어진 대화시간을 마칠 무렵 관객들에게 "너무 고맙다. 한국을 두번째 방문하는데 23년이 걸렸지만 세번째 방문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다음은 관객들과 빔 벤더스 감독이 나눈 일문일답이다.

- 〈밀리언 달러 호텔〉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부분 비정상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데, 어떻게 이런 시나리오가 나오게 됐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이 작품의 시나리오는 록그룹 U2의 멤버 보노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는 나와 가까운 친구인데, 그가 준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비정상인들의 놀라운 생명력과 그들의 사랑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다. 보노가 눈을 찡끗하며 누가 감독을 하면 좋을까라는 질문을 했을 때 내가 함정에 빠졌다는 걸 알았다.(웃음)
"

- 〈파리,텍사스〉,〈베를린 천사의 시〉그리고 이번 〈밀리언 달러 호텔〉까지 영화속에 등장하는 공간이 깊은 인상을 준다. 영화 속에 공간이 어떤 비중을 차지하는지.

"내겐 내러티브보다 공간이 중요한다. 영화를 만들기 시작할 때 어떤 공간이 나에게 영감을 주면 영화를 만들게 된다. '밀리언 달러 호텔'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내게 많은 이야기들을 떠오르게 했다. 공간 자체가 비극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14년 지어졌을 당시 최고급 호텔로서 대통령이 LA를 방문하면 묵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가난하고 버림받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변했다. '밀리언 달러'라는 이름자체가 아메리칸 드림의 역설적 모순을 상징하고 있다. 그런 지옥같은 곳을 톰톰이라는 보잘 것 없는 한 인간의 무한한 생명력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해 천국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 영화 속의 음악들이 항상 너무 좋다. 음악을 선택하는 기준이 무엇이고 영화 속에서 어떤 힘을 가지는가.

"배우 다음으로 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영상과 음악을 결합시키는데 일정한 규칙이 있지는 않다.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같은 경우 음악 때문에 영화를 만들게 된 경우이다. 보통 시나리오 작업시 음악에 대한 컨셉을 미리 토론하고 결정한다. <밀리안 달러 호텔>
의 경우는 더구나 각본을 쓴 사람 자체가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다. 이영화는 도시적이고 재즈풍의 음악이, 그리고 지나치게 기계적인 것보다 자연음에 가까운 음악이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 음악과 영상을 결합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영상을 14일동안 보면서 즉흥적으로 연주하며 작업했다."

- 독일인으로서 미국과 함께 미국에서 작업하는 이유는.

"20년전만 해도 미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세계 어느 곳에서 작업하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당시 미국 영화산업은 월등히 우월했기 때문에 그런 시스템에서 작업하고픈 꿈이 있었다. 〈파리,텍사스〉를 미국에서 찍을 당시 마치 게릴라처럼 온갖 역경과 싸워나가야 하는 위험한 작업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후 미국관객들의 반응을 통해 결코 미국 감독이 될 수 없는 한계를 깨달았다. 17년이 지난 지금, 미국에서 작업하기도 편해졌지만 무엇보다 독일의 마음을 가진 유럽감독이라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한다."

- 〈베를린 천사의 시〉,〈파리,텍사스〉등 모든 작품들이 시적이다. 평소 시를 좋아하나.

"책을 많이 읽는데 그중에서도 시 읽기를 가장 즐긴다. 시인이 시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듯 나는 영화에서 영상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를 테면 〈베를린 천사의 시〉를 만들때 베를린의 비합리적 상황을 줄거리 있는 이야기 구조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시나리오 없이 시작했고 시인이 영감에 따라 시를 쓰듯 영화를 만들었다. 그 영화를 찍을 당시 통독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지만 3년후 현실화됐다.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시적 영감으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예언자적 영화가 나오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 모든 사람이 환호했던 독일의 통일은 이제 더이상 누구도 기뻐하지 않는 씁쓸한 경험이 되버렸다. 바라건대 한국은 독일과 같은 외형적 통일에 그치지 않고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이루기 바란다."

- 자신의 작품 중 가장 맘에 드는 작품은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좋다, 나쁘다의 기준이 아니라 영화를 찍을때 어떤 영화적 체험을 했는지를 기준으로 볼 때는 〈도시속의 앨리스〉를 꼽고 싶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밀리언 달러 호텔〉이다. 좋은 배우들과 자유롭고 흥미로운 제작과정을 거쳤다. 보통 영화를 찍을 때 배우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에 빠져들게 돼 영화를 끝낸후 나락에 빠지는 경험을 하지만 감독은 그정도면 됐다 싶은 선에서 멈추고 싶어한다. 그런데 <밀리언 달러 호텔>
을 찍을 때는 나도 배우들처럼 영화속에 빠져들어 결코 끝내고 싶지 않았다. 영원히 호텔에서 살고 싶었다."

Joins 엔터테인먼트 섹션 참조 (http://enzon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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