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번 잘못 먹고 날벼락 맞은 산골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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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산골 주민들이 국회의원 선거 예비후보자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가서 식사를 제공받고 총 29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됐다. 이 사건에 연루된 주민은 모두 23명으로 1인당 과태료가 160여만원에 이른다.

 경북도선관위는 4·11 총선에서 영양-영덕-봉화-울진 선거구에 출마한 A예비후보자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 음식물 등을 제공받은 봉화군 유권자 23명을 적발,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21일 밝혔다. 또 이들에게 교통편과 음식물을 제공한 선거구민 B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문제가 된 마을은 쌀 농사가 전부인 봉화군 물야면 북지2리다. 지난 11일 이 마을 출신으로 봉화에서 건설업을 하는 B씨가 동네 주민들을 모시겠다며 관광버스를 빌렸다. 후배가 울진에 횟집을 냈으니 주민들을 모시고 가 축하한다는 것이었다.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선거사무소 이야기는 없었다고 한다.

 버스가 출발하자 차 안에서 준비한 11만원어치의 떡과 술이 나왔다. 주민들은 울진에 도착해 횟집에서 64만원어치의 점심을 먹었다. 일은 점심을 먹은 뒤 꼬이기 시작했다.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들르자는 것이었다. 그때 일부 주민은 ‘이거 선거 밥을 얻어 먹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문제는 울진에서 봉화로 돌아가려면 타고 온 버스를 다시 탈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이 버스에 오르자 예비후보자 A씨가 인사하고 악수하며 배웅했다. 봉화에 도착하니 저녁때였다. 다시 갈비탕과 육회로 저녁을 먹었다. 주민들은 생각지도 않게 말려들어 이날 모두 150만원 상당의 음식물과 교통편을 제공받게 됐다.

 제보를 받은 선관위는 현장을 목격했다.

 경북도선관위는 이들에게 역할에 따라 제공받은 금액의 30∼50배에 해당하는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주민을 모으고 개소식에서 테이프 커팅을 하는 등 적극 가담자는 50배가 적용됐다.

 조사를 마친 도선관위는 21일 주민들에게 ‘과태료 통지 및 의견제출서’를 발송했다. 과태료는 1인당 평균 160여만원씩 모두 2900여만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들 가운데는 부부가 함께 참석해 최고 1가구에 400여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집도 6가구나 된다.

 선관위는 이번 사건에서 A씨와 B씨의 특별한 연관성은 찾아내지 못했다. A씨는 이번에 공천을 신청했다.

 봉화군선관위 강신재(56) 지도계장은 “봉화군은 2006년 군수 선거와 지난해 조합장 선거 때도 주민들에게 무더기로 과태료가 부과돼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며 “없는 농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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