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시스트 대중가수의 문화운동 평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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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 Books 편집장

그때 우리에게 노래는 신호였다. 학교 안 잔디 밭에 사복 경찰과 함께 생활해야 했던 때였다. 하나 둘씩 입에서 입으로 전한 시간, 장소에 모여서 시위 채비를 갖추고 있을 때, 누군가의 신호가 필요했다. 신호만 떨어지면 학생들은 한꺼번에 옆 사람과 어깨를 겯고 시위를 시작하고, 건너 편에 모여 앉아 있던 사복경찰들은 그들대로 시위대를 저지하기 위한 저지선을 형성하게 될 것이었다. 어떤 신호가 떨어질 것이라는 것은 예고되지 않았다. 그냥 모두가 '이것이 바로 신호'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그 신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

"흔들리지 않게 우리 단결해, 흔들리지 않게 우리 단결해, 물가에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 노래는 신호였고, 힘이었다. 노래를 신호로 시작되는 시위는 일정한 수준으로 무르익기까지 노래는 서로를 엮어 주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아무 계획 없이 흘러나오는 노래는 곧바로 모두의 입에 실려 우렁찬 함성으로 이어져 하늘가로 울려 퍼졌다. 그리고 경찰과의 한 차례 밀고 밀리는 공방을 거친 뒤, 처진 몸으로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앉아서는 다시 노래를 불렀다.

꽃밭에는 꽃들이 한 송이도 없네
오늘이 그날일까 그날이 언제일까
해가 지는 날, 달이 지는 날
지고 다시 오르지 않는 그 날이

싸움터엔 죄인이 한 사람도 없네.
오늘이 그날일까 그날이 언제일까

우리네 80년대 대학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지구 반대편 칠레에서 70년대에 불렸던 노래 하나가 우리의 노래와 흡사해 눈길을 끈다.

병사여, 나를 쏘지 말게나
병사여,
너의 손이 떨리는 것을 나는 아네
병사여, 나를 쏘지 말게나.

누가 네게 훈장을 달아 주었는가?
넌 얼마나 많은 생명을 빼앗았나?
내게 말해다오, 병사여.
모든 게 옳다면, 피의 대가로 누가 승리하는가?
학살이 그토록 부당한 일이라면,
왜 너의 형제를 죽이는가?

1973년 칠레 파시스트 군부의 총탄을 맞고 쓰러져간 민중 가수 빅토르 하라의 노래〈병사의 노래〉다. 그는 가수이자 연극연출가였으며, 누에바 깐시온이라는 민중문화운동의 선구자였다. 80년대에 활발했던 우리의 노래운동과 꼭 닮은 문화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지만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빅토르 하라와 그의 문화운동 '누에바 깐시온'을 소개한 책,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배윤경 지음, 이후 펴냄)가 나왔다.

"빅토르 하라가 우리에게 낯선 이유는 그가 미국의 대중음악인 팝을 부른 사람이 아니고, 영어를 쓰지 않았으며, 스타는 더더욱 아닌 데다가, 칠레라는 경제적 문화적 '후진국'-실제로 그렇지는 않다-에서 활동한 '월드뮤직'의 대가이기 때문이다."(이 책 80쪽에서)

빅토르 하라는 35년 칠레의 산티아고 변두리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떠돌이 생활,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 등을 청소년 기에 겪은 그는 신학교와 군 자원 입대 등으로 빈곤의 피난처를 삼았다. 우연히 합창단원 모집에 응시했다가 합격함으로써 훗날 노래운동가로 성장할 수 있는 첫걸음을 내디디게 된다.

이후 칠레의 민속 음악을 바탕으로 새로운 노래 형식을 실험해온 여자 가수 비올레따 빠라를 만나 민중의 정서를 파고드는 음악의 가능성에 눈뜨기 시작하면서 그는 노래를 통한 민중문화 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59년 연극학교를 다니던 그는 첫 연출 작품으로 멕시코, 과테말라, 쿠바 등지로 순회공연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그는 숙명적으로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와 만나게 된다. 길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그 만남에 인상이 깊었던 그는 훗날 게바라에게 바치는 노래를 두 곡 만든다. 그리고 둘 중 "한 사람은 혁명을 위한 게릴라전 중에 볼리비아 산중에서 죽고, 한 사람은 비열한 군부 쿠데타의 제물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이 책 88쪽에서)

자신이 칠레의 가장 소외된 민중의 한 계층 빈민 출신인 하라는 이후 칠레 곳곳에 널려 있는 민요를 채록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이 때 그는 민중의 전통과 고난에 찬 생활상을 직접 보면서 현실의 구조적 모순에 눈뜨게 된다. 그가 마르크스주의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그렇게 이론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에 흐르는 민중 의식과 직접 목격한 민중의 삶과 정서를 통해 얻은 본능적인 것이었다.

노래는 민중과 만나 민중과 함께 혁명운동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고 믿었던 그는 "예술가란 진정한 의미에서 창조자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으로써 그 본질 자체로부터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그 위대한 소통 능력 때문에 게릴라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존재가 바로 예술가"라고 말했다.(이 책 93쪽)

이후 하라는 1970년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아옌데가 이끄는 인민연합 측에 가담, 선거 승리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인민연합은 파시스트가 이끄는 군부의 쿠데타에 의해 붕괴되고 빅토르 하라는 감금된다. 73년 파시즘의 위협에 대한 아옌데 대통령의 연설회에 앞선 식전 행사에 참가했던 그는 군부에 체포됐다가 손목이 부러진 채 총상을 입은 처참한 시체로 발견된다.

이로써 민속음악의 부흥, 사회 불의 고발, 인권 옹호 등을 주제로 한 라틴아메리카의 노래운동 '누에바 깐시온'을 이끌어온 빈민 출신의 가수의 삶은 참혹하게 끝을 맺었다.

우리에게 빅토르 하라의 삶은 지난 88년 하라의 부인 조안 하라가 쓴 평전 〈끝나지 않은 노래〉(차미례 옮김, 한길사 펴냄)를 통해 그가 소개된 적이 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책은 월드뮤직 비평가이며, 1인 인터넷 방송을 운영하고 있는 배윤경 님이 빅토르 하라를 중심으로 한 누에바 깐시온 전반에 대해 쓰고, 부록으로 빅토르 하라의 노래 음반을 첨부해, 보다 입체적으로 빅토르 하라를 느낄 수 있다.

처음 듣는 사람들도 그 노래의 감미로움에 금세 빠져들 만큼 아름다운 노래들이다. 지구 정 반대편에서 그것도 30년 쯤 전에 불렸던 노래이지만, 바로 우리가 불렀던 노래였던 것처럼 친근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은 그들과 우리가 겪은 사회적 상황이 같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다움의 본질은 세상 어디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은 까닭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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