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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연예인이야? 축구선수야?"

중앙일보

입력

요즘 선수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경기하러 나가는지 몰라 ―. 한국 축구계의 맏형 이회택이 답답하다고, 후배들을 향해 모처럼 一喝했다. 우직하게 자신을 연마하는 선수가 없다고, 열불나게 인터뷰니 광고니 무슨 행사니 쫓아다니는 선수들만 늘어난다고 그는 야단쳤다. 이회택의 자칭 ‘구닥다리 축구論’.

아아 ―, 그랬지. 하 참. 뭐 어떡허겄어. 기다릴래? 그냥 갈래?” 지난 9월4일 월요일 오후 1시에 전남 광양의 드래곤즈 선수단 숙소에서 이회택 감독을 만나기로 하고, 서울에서 새벽차를 몰아 정시에 도착했다. 광양제철소 제1정문 언저리의 주택단지내 여러 건물 중 백상생활관 제2동 2층이 선수단 숙소이고, 이감독의 방은 그 한가운데다. 방문이 잠겨 있어 휴대폰을 걸었다.

그랬더니 정말 이쪽이야말로 ‘크’하고 ‘돌아버릴’ 응답이 왔다. “크, 이거 돌겠네. 갈수록 깜빡깜빡해서 말야. 내가(약속을)
까먹었어. 어제 일이 있어서 서울에 잠깐 왔다가 지금 가는 길이거든. 지금 청주나 어디 되는 거 같은데 되게 막히네”라는. 그리고는 기자더러 “기다릴래, 그냥 갈??하고 되묻는 것이다.

어쩌랴. 이래저래 ‘세월’은 흘러 이감독을 대면한 것이 오후 5시반 무렵. 숙소가 아니라 그곳에서 차를 타고 5분쯤 거리에 있는 드래곤즈 연습구장에서였다. 시커먼, 아니 새까만 얼굴에 희끗희끗 센 머리. 좀 조는 듯, 느긋한 얼굴이다. 고향에 돌아오니 농사짓던 형님이 논두렁에서 털털 손을 털면서 마중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을, 기자는 확 느꼈다. 소탈했다.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누는데 첫마디가 “오늘 늦어서 미안해”가 아니다.

“햐 이거, 하필 오늘은 정말 몰골이 말이 아닌데…. (사진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허름하고 검은 셔츠의 앞자락에 묻은 허연 자국들을 벅벅 손으로 문지르면서)
아까 내려올 때 휴게소에서 배고파서 호떡 두개 사먹었거든. 그거 쨈이 흘러서 말야. 내가 이 모양이야. 이거 지워지지도 않어.”

기자가 분위기를 맞추려고 “(호떡)
남았습니까?”하자 그는 입술을 뾰족하게 모으고는, 대답 대신 이렇게 되쳤다.

“이 먼 데까지 뭣하러 와? 또 우리 아버지 얘기 들으러 왔어? 아휴, 여기저기서 하도 얘기 좀 하라고 난리들을 쳐서 진저리가 나. 그 얘기라면 꺼내지도 말어. 말할 거 뭐 있어. 가슴만 아프지. 내가 아버지 며칠 보고 와서도 지금까지 가슴 쓰려 죽겠는데 저렇게(상봉한 이산가족들)
하룻밤씩 얼굴 보고 가면 오히려 그게 더 한(恨)
스러울텐데….”

▷ 걔들이 진짜 스타 맞아?

1990년 10월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남북축구시합이 열렸을 때, 남한팀의 이감독은 평양에서 북의 부친을 만나 3박4일 동안 함께 지냈고, 그것이 화제가 됐었다. 그래서 지난 8월15일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인터뷰 요청이 몰렸던 모양이다.

기자가 “그게 아니고, 한국 축구 전반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싶어 왔다”고 하자 이것도 풀풀 웃으면서 ‘퉁’이다.

“한국 축구? 그 다 알잖어? 내가 특별나게 더 할 얘기 남았을까? 그게 그거지 뭐. 내려왔으니까 저녁이나 먹자고. 그냥 나 만났다 그러고 몇마디 비벼가지구 적당히 쓰면 스토리 좍 나오잖어. 새삼 또 무슨 얘기를 하누?”

그의 말은 옳다. 한국 축구에 대해서는 이미 그 장점과 단점, 강점과 약점, 개선점과 보완해야 할 점, 경기 때마다 필요한 비책(秘策)
과 장기적인 발전책까지 나올 얘기는 사실 모두 나와 있다.

축구광인 기자나 이감독이나 피차 그 뻔한 얘기나 나누자고 만난 것은 아니다. 그런 얘기는 가능한 한 많이 빼는 것이 서로의 시간을 절약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대놓고 인터뷰 본론을 꺼냈다.

― 지난번 프로축구 올스타전 감독을 맡았을 때 선수들한테 “겉멋만 부린다”고 야단치셨죠?

“아 그거. 내가 뭐 남의 구단 선수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한 것은 아니고, 그냥 후배들이니까 지나치듯 한마디 한 거지. 야단은 무슨―. 그런데 인터뷰 오래 걸려? 나 10분 이상 얘기할 것도 없고 얘기해 본 적도 없어.”

― (거듭)
“겉멋만 부린다”뇨?

“한참 자라는 선수들이 자꾸 다른 데 신경을 쓴다, 이거야. 진짜 축구에 매달려 자기 소질을 살리고 실력을 닦고 해야 하는데 자꾸만 매스컴에서 스타 타령을 하니까 헛바람이 들어가지고….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아 지들(선수들)
이 축구 하는 놈들이지 뭐 딴 거 하자는 놈들이야?”

이감독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어눌하다’고 하는 것보다 좀더 어눌한 편에 가까웠다. (나중에)
기자가 조목조목 정리를 잘 해 줘서 그렇지, 얘기도 정연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되게 컸다. “생각대로 말할 테니까 나중에 권형이 알아서 적어”라며 그는 직설(直說)
해 나갔다. ‘겉멋’이란 말을 길게 말하기 위해 그는 A선수와 B선수를 거명했다.

“정말 솔직하게 권형한테, 아니 축구팬들한테 물어봅시다. 가령 그런 애들이 진짜 스타야? 진짜 축구스타냐구? 지금까지는 다 그거 매스컴에서 만들어 놓은 거 아냐? 아니, 걔들 빠진다구 한국 축구 덧나나? 쓰러져? 스타라는 게 뭐요? 그 분야에서 정말 잘 해서, 노력해서 정상에 올라가고 플레이로 인정받고 해야 진짜 스타지, 매스컴에서 ‘우’ 하면 그냥 스타 되는 거요? 솔직히 대한민국에 그 놈들만큼 축구 못하는 선수 누가 있어?”

― 그들의 실력은 국내외에서 그런대로 인정받는 것 아닙니까?

“바로 그거, 그게 문제야. 그 선수들이 소질이 없거나 축구실력이 없다고 내리까는 게 아니야. 그만한 소질, 정말 우리나라 축구를 짊어지고 나갈 재목감들인데 ‘소질’ 수준에서 땡이야. 더 안 나가. 스무살 안팎이면 앞으로 창창하거든. 소질이 있다, 실력이 있다,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를 들을 때 죽기살기로 자기 단련과 연습에 매달려야 하는 거야. 그러면 진짜 꽃피지.

그런데 그 얄팍한 스타 단계에서 끝나거나 멈춰 버려요. 그냥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그때부터는 자기 단련에 들어가지를 않고 자꾸 딴 데만 신경써. 그게 안타깝다는 얘기지.”

― ‘딴 데’요?

“따지고 보면 그 선수들 잘못도 아냐. 그게 다 매스컴의 횡포지, 횡포. 신문도 그렇고 방송도 그렇고. 조금 한다 싶으면 방송이다 신문이다 해서 가만히 놔두지를 않아요. 경기 마치고 지방에 내려가 있는 놈을 굳이 서울로 불러올려 가지고 인터뷰다 무슨 행사다 특집이다 라고 돌리니까 그 나이(20세 안팎을 의미)
애들이 무슨 생각부터 하겠어?

당연히 머리를 줄줄 기르고 노랑물감에 빨강물감에 떡칠을 하고 이제는 아주 귀고리까지 해대고 말이지. 그런데만 점점 신경쓰더라 이거야. 새벽부터 밤까지 어떻게 하면 자기 축구 실력을 높일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고 틈 나면 미장원 가서 붙어앉아 있다는 말예요. 그게 될 일이냐구.”

선수들의 머리염색에 대해 말을 꺼낸 뒤로, 기자가 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감독은 10여분 동안 ‘흥분상태’에 가깝게 얘기를 이어나갔다.

“나두 딸이 있는데 걔가 나보고 정말 구닥다리래. 젊은 애들 머리염색 안하는 애가 없다는 거지. 좋아. 빨갛구 노랗구 간에 좋다 이거야. 그런데 축구스타라면 정말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줘서 축구팬들한테 저절로 스타 소리가 나오게 만들어야 하는 거 아냐? 정신상태가, 앞뒤 순서가 바뀌었어. 몇몇 선수가 스타 소리 들으면서 그렇게 외모에 신경쓰니까 이건 뭐 다른 선수들까지 다 똑같이 한다고 난리야.”

그러면서 고종수(수원 삼성)
선수가 화제 속으로 끌려들어왔다.

“우리가 과일을 설익었다 그러잖아. 설익은 과일 먹어보면 어때요? 겉보기에 빛깔 좋지, 그럴 듯하단 말이야. 그런데 콱 깨물어 보면 어때? 바로 그런 거라구. 속이 익으면 겉에 바르고 꾸미고 닦지 않아도 빛이 난다구. 진짜 스타라는 것도 그런 거예요. 설익은 상태로 자꾸 애들을 스타 취급 해서 축구팬들 앞에 내놓으니까, 축구팬들은 한눈에 탁 알아 보거든. 저 선수가 설익었는지 농익었는지. 스타 아닌 애들을 자꾸 스타라고 우겨서 내놓으니까 축구장에, 그걸 참 욕할 수도 없고, 축구팬보다 여자 중학생 애들이 더 많어. 진짜 익는다는 거, 그렇지 요새 종수가 한꺼풀 진짜로 벗겨졌드만. 이제 진짜 스타답게 플레이해요. 종수도 설익었던 때가 좀 있었는데 지금 보라구. 그런 선수가 머리염색하고 그러면 귀엽잖아. 그래도 요새 염색은 잘 안하드만. 자기 안으로 들어가 노력하니까 플레이가 확 달라. 완전히 달라졌어.”

▷ 빛깔 좋아도 설익은 과일

1970년대 새파랗게 젊은 이회택 선수가 발에 공을 달고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빌 때의 모습을 올드 축구팬들은 아직 잊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는 그때 초등학생이었다. 선명하게 기억되는 한 장면에서 이선수는 틀림없이 장발이었다. 당시 어른들이 핀잔하고 경찰의 단속 대상이 되기도 했던 그 장발 유행을, 젊은 이회택군도 따랐던 것이다. 자기도 그때 그랬으면서 왜 지금 선수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엄격한 얼굴을 하는가? 그의 변명은 무엇일까?

“몇달인가 나도 장발해 봤어. 그때 좌우지간 젊은이들은 다 하니까 나도 뭐가 뭔지 모르고 처음으로 머리를 길러 본 거야. 그런데 그게 뭐 별것 아니더라구. 축구 하는 데 귀찮기만 하구. 그래서 좀 기르다가 다시 짧은 머리로 돌아갔지. 멋있게 보이려고 하거나 무슨 팬들이 우 따라 다녀서 거기 잘 보이려고 꾸미고 했던 게 아니야. 장발을 하고 다녀도 다듬고 빗고 그런 거 없었어요. 터벅하게 대강 돌아다니는 거지. 지금 선수들의 머리염색(심리)
하고는 차원이 다르다니까.”

일반적으로 한국 축구의 발전이라는 주제를 놓고 넥타이를 매고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얘기가 바로 ‘스타 부재(不在)
’다. 팬을 끌어모으는 것은 결국 스타인데 우리에게는 호나우두도 히바우두(모두 브라질 선수들)
도 없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수년 전부터 각 프로축구단과 여기에 언론이 가세해서 스타 만들기에 열중해 온 게 사실이다.

구단마다 20세 전후의 어린 선수들을 자기팀 마스코트보다 더 내세우며 팬들의 눈길을 잡아매려 했다. 그것은 어느 정도 팬들을 경기장으로 불러 모으는 데 성공했다.

― 스타가 많아야 프로축구든 한국축구든 발전하는 것 아닙니까?

“매스컴하고 프로구단이 좌우지간 손잡고 스타 만들고 구단 홍보하고 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이거야. 그러면 그 다음에는 그렇게 만들어 놓은 스타 선수들에 대해서 엄격한 ‘관리’가 있어야지. 이건 뭐 틈만 나면 인터뷰다, 광고다, 무슨 행사다 해서 오만군데 다 돌아댕기고, 딴 데 신경쓰게 내버려두는 거라. 그러니 연습은 언제 하고, 실력은 또 언제 늘리나? 그게 잘못됐다 이거요. 당장 문제가 되는 게 뭔지 알아요? 피로를 회복할 시간도 없어. 자, 프로선수가 매일 경기를 하지 않고 1주일에 한차례씩 경기를 하는 건 경기 때 혼신의 힘을 다해 탈진상태가 되기 때문이거든. 그리고는 나머지 6일 동안 차 타고 이동하고 연습하고 해요. 쉴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요. 정상적으로 돌아가도 그 꼴인데 이거다 저거다 해서 여기저기 끌려다니고 이것저것 신경쓰고 해 보라고. 언제 쉬고 언제 회복해? 잔뜩 (피로가)
쌓여 가지고 다음 경기에 나가니 제대로 뛰는 건 고사하고 노상 부상만 당하지.”

― 프런트(구단 행정)
에서 ‘그런 관리’를 못하면 감독들이라도 할 수 있잖습니까?

“할 수 있지. 우리 팀 같으면 내가 당연히 그렇게 하지.”

― 다른 팀들은요?

“프런트가 감독보다 쎈가 보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장소를 옮겨 식당으로 가는 동안 기자가 이감독의 프린스 승용차 안에서 “아주 보수주의적인 축구관을 갖고 계시다”고 말을 붙였다. 그는 “안 그래도 어린 선수들이, 아니 당장 우리 딸이 맨날 나하고 세대 차이가 난다고 그?굡窄庸?축구에 대한 자신의 취향(?)
을 길게 덧붙였다.

“보수주의라도 좋고 구닥다리라도 좋아. 난 예나 지금이나 그냥 우리가 평범하게 알고 있는 그대로 열심히 공을 차면 된다, 그런 생각이거든. 거 왜 무슨 ‘골 넣는 골키퍼’니 그런 말들도 하잖어? 아니 골키퍼라는 포지션이 뭐야? 자기편 골문 잘 지키라고 세워놓은 거잖아. 골대 비우고 뛰쳐나가서 골 넣는 골키퍼 같은 건 난 아주 별로야. 한 골 넣지 말고 열 골 막아라 이거지. 축구는 그렇게 고지식하게 하는 거라고.”

경남 하동 근처의 한 횟집에 도착해 TV를 보니 마침 우리 청소년대표팀과 일본 청소년대표팀간의 평가전 경기가 중계방송되고 있었다. 경기 결과는 1대1 무승부. 이 경기보다 앞서 한국 올림픽대표팀은 나이지리아 올림픽대표팀과 가진 두차례 평가전을 모두 5대1로 이기기도 했다. 한국축구의 전체적인 무드가 상승세이던 시점이다.

― 우리 신세대 선수들 좋아졌죠?

“이길 때 보면 그렇지. 그러다 지면? 축구라는 게 하루 아침에 확 달라지고 하는 건 아니잖어? 그동안 협회(대한축구협회)
에서 지원이 많았고 또 우리 올림픽대표 같은 경우에는 포지션별로 선수 구색이 그런대로 갖춰져 있으니까 좋지. 그렇지만 개개인의 능력이 향상됐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전체적인 수준이 죽 올라갔지. 어쩌니 저쩌니 해도 프로축구가 생겨나고 나서 다 좋아지는 거요. 왜냐하면 옛날과 달리 지금은 선수들이 사시사철 몸을 만들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짜여진 거그든. 그래서 선수들이 좀더 개인적으로 독하게 굴면 금방 클 수 있어요.”

― 대표팀도 이제 월드컵 예선은 늘 통과하지 않습니까?

“그게 프로축구 있는 나라에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니까. 이제 보라구. 중국·일본 때문에 이제 한국도 예선전 치르려면 점점 더 어려워질 걸. 중동도 있구. 걔들이 한국 축구할 동안 노나? 내가 내 위의 선배님들이나 다른 분들 만나면 항상 이 얘기를 해요. 뭐냐면 ‘이제 우리 축구가 월드컵 진출은 이루었으니까 2단계로 세계시장에 좋은 선수들을 많이 내보내야 한다’고 말야. 제일 좋은 거야 우리 다 아는 대로 국내에 클럽시스템과 어린이축구교실이 정착되면 좋지. 그건 멀었으니까.”

▷ 부지런히 선수 키워 내보낼 때

국가대표와 프로 출신 유명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한국에도 어린이축구교실은 이제 꽤 많아졌다. 이감독 역시 고향인 김포에 ‘이회택 어린이축구교실’을 열어 운영하고 있다. 이런 류의 축구교실은 지금 모두 앞에 이름을 내건 사람이 사비(私費)
를 들여 끌어간다.

외국의 경우에는 각 프로구단 아래 유소년­청소년팀을 두고 있어서 재정적 고민이 덜하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축구인들이 축구교실을 열어도 그 운영은 쉽지 않다. 숫자는 많지만 외국의 본격적인 클럽시스템 아래서의 축구교실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 그런 점에서는 일본이 우리보다 빨리 치고 나가는 것 같은데요.

“아까 그 경기 할 때 일본 선수들 볼터치를 보라구. 달라졌어. 자기한테 볼이 올 때 첫 터치, 어느 방향으로 볼을 놓느냐, 그게 지금 축구에서는 갈수록 중요하거든. 그게 일본이 우리보다 앞섰어. 어린이축구가 다르거든. 일본은 선진축구를 슬슬 따라가요. 선진축구라는 게 뭐야? 우리나라 사람들은 애들이 걸음마 떼고 말을 할 줄 알게 되면 좋은 학원, 좋은 선생 찾으러 쫓아다니잖어? 그러다 나중에 공부 안되면 운동이나 시켜볼까 하는 거고. 외국 애들은 안 그렇지. 걸음마 떼고 말을 할 줄 알게 되면 부모들이 얘를 어떻게 건강하게 키울까 생각하거든. 그러다 보니 나중에 무슨 운동을 해도 몸이 받쳐줘요. 학교수업에도 매일 체육시간이 있잖어.”

이감독 자신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축구만 해온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말처럼 축구에만 골몰해서, 축구만 생각하면서 지내왔는가? 그가 앞에서 말한 내용들을 떠올려 가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과거 축구 이력을 잠깐 되짚어 보자.

1946년생인 이회택이 김포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축구부고 뭐고 없던 시절이었다. 전후(戰後)
에 놀 것이라고는 오로지 발로 공을 차는 것밖에 없었다. 지금같은 축구공은 없었고 애들 머리만한 작은 고무공을 가지고 공터만 있으면 축구를 했다. 마침 김포에서는 축구가 대유행이었다. 동네별로 편을 짜서 매년 봄에 정기 대항전이 열리기도 했다.

어린 회택이 축구에 미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이 시절부터 고교 진학 때까지 그는 공을 차며 살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다시 잠들 때까지 노상 축구 말고 한 게 없다는 게 그의 기억이다.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동네 대표선수로 김포군 정기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김포중학교를 졸업한 뒤 김포농고에 들어갔지만 축구를 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1학년을 마치던 겨울방학때 그는 서울 한양공고 축구부를 찾아가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연락할 때까지 집에 돌아가 기다리라”고 했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계속 김포농고를 다니던 무렵 알고 지내던 선배가 “영등포공고 축구부가 괜찮다”면서 입단 테스트를 받아보라고 권했다. 그해 가을 영등포공고 축구부에 들어간 이회택은 들어가자마자 ‘일’을 낸다.

이듬해 봄에 열린 전국고교축구 춘계 토너먼트 본선,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부산상고와 첫 경기가 열렸다. 회택은 처음 출전한 이 경기에서 발군의 스피드와 개인기로 내리 2골을 넣었다. 영등포공고의 2대0 승리였다. 이어 벌어진 8강전 경기에서는 광주상고와 붙었다. 여기에서도 회택이 2골을 넣어 팀은 또 2대0으로 이겼다.

이른바 ‘고등학교 4학년’선수들이 흔할 때다. 회택의 진가를 알게 된 영등포공고에서는 그를 1년이라도 더 학교에 잡아두고 묵히기 위해 그를 등록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회택은 적(籍)
도 없는 무소속 선수로 뛰었다. 그러던 차에 서울 동북고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동북고 축구부에 들어가자 학교측에서 2학년에 등록시켜 주었다. 말하자면 김포농고―영등포공고―동북고를 거치면서 2학년을 두번 다니는 셈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그는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된다. 어렸을 때부터 놀이 겸 시작한 동네축구로 이미 개인기가 다져진 상태였지만 거기에다 그는 독한 개인훈련으로 자신을 만들어 나갔다.

“동네에서 난다긴다 해서 서울로 올라와 선수들과 뛰는데 확실히 주먹구구 축구하고는 차이가 있더라구. 그래서 여기서 뒤떨어지면 영영 축구를 못한다 생각하고 죽어라 남들 모르게 훈련을 하는 거야.”

서울 약수동에서 기거하고 있던 까닭에 그의 개인연습장은 장충동 일대 공터였다. 새벽에 일어나 두시간, 오후에 학교 축구부 훈련, 그리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는 또 공을 들고 나갔다.

“그때 길거리에 보안등이라고 삿갓 씌운 전구 있었잖어. 그 밑에만 환하거든. 거기서 밤 늦게까지 공을 갖고 권투에서 섀도복싱 하듯이 말야, 혼자 공을 갖고 연습하는 거야. ‘난 국가대표 선수가 되겠다’고 중얼거리면서 말이지. 스피드 훈련은 어떻게 했느냐 하면, 그때 장충동 쪽으로 한 10분 정도에 한대씩 택시가 들어오곤 하거든. 택시가 들어오는 게 저만치 보이면 지금 그 왜 수정약국이라고 있어요. 거기서부터 장충체육관까지 택시하고 나란히 달리기 시합을 하는 거야. 저녁에 그걸 대여섯번, 아무리 못하는 날도 세번은 해야 안심이 됐으니까. 빡빡머리에 잠뱅이 입고 누가 보든 안 보든 그 난리를 떤 거지. 그렇게 한 2년 하니까 확실히 남들보다 빨라지더라고.”

경기에 들어가서도 그런 식이었다고 한다. “딴 생각 없어. 딱 경기장에 서면 공하고 이겨야 된다는 생각뿐이야. 누가 무슨 응원을 왔는지, 어디서 하는지 몰라. 지면 나는 죽는다는 생각밖에 없는 거야. 축구선수라는 게 그런 거지. 축구 말고 뭐 있어. 얘나 지금이나 축구 하는 놈이 축구 빼버리면 껍데기 아냐? 아, 막말로 나나 범근(차범근 감독)
이나 정무(허정무 감독)
나 다 깡촌에서 나서 축구 말고 뭐 있어? 옆에 불이 났는지 물이 났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축구밖에 몰랐잖아. 그러다 보니까 대표선수도 되고 한 거지.”

또 한번 아까 아까 했던 얘기를, 격앙돼 말한다. “물론 매스컴과 팬 없이 스포츠가 성장할 수 없지. 그렇지만 매스컴과 축구팬이 진짜 스타가 어떤 사람인가를 잘 가려내서 보호하고 위해 줘야 돼. 아직 설익었는데 확 띄워 잡아먹을 생각 말고 말이지. 우리 축구, 후배들 보면 얘들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요. 정말 매스컴과 여중생들이 가만 놔두지 않거든. 진정한 스타 축구가 아니라 지금은 완전히 ‘여중생 축구’야, 여중생 축구.”

― 이감독 세대 선수들과 지금 선수들을 비교해 보면 어떻습니까?

“확실히 전체적으로는 좋아졌어. 그건 확실해. 체격이나 체력도 좋아지고 헤딩도 좋아졌어. 슈팅·패스·수비 골고루 다 발전했어요. 그렇지만 어딘가 모르게 허전하고 아쉬워. 그게 뭔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선수 개개인의 두드러지는 칼라랄까, 저 선수는 이렇다는 특징이 없는 거라. 전에 선수들은 ‘질기다’‘패스가 칼이다’‘몇명은 제낀다’처럼 탁탁 찍어 말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특징이 없어지는 거 같애. 토털 사커라서 그런가?”

― 연습할 때 선수들에게 뭘 주로 강조하세요?

“딴 거 없어요. 선수 개개인의 단점을 파악해서 그걸 고치라고 주문하는 거지. 그런데 그게 잘 안돼. 참 아까 그 옛날 선수들과 지금 선수들 차이점으로 그런 게 있어. 이건 내 얘기만이 아니고 축구인들이면 다 하는 말인데. 전에는 자기가 잘 안 되는 게 있으면 쌍코피를 흘려가면서라도 고쳐보려고 애썼거든. 지금? 그런 기(氣)
가, 오기가 없어. 집념도 없고. 하긴 지금이야 생활 폈지, 배고픈 일 없지 하니까, 또 웬만한 실력이면 평균치 선수생활 유지할 수 있으니 굳이 힘들게 안 하려고 그래. 분명히 단점을 지적해 줘도 백날 가도 안 고쳐지는데 뭐. 그게 뭐야? 자기는 자기 생각이 있다 이거 아니야? 한 동작 고치려면 1만번 연습해야 돼. 그게 우리 몸이라고. 그런데 지금 선수들? 100번이라도 하면….”

▷ “지가 알아서 하는 거, 그게 프로야”

― 감독이나 선배들이 후배 선수들의 ‘정신자세’, 거기까지는 아니라도 ‘생활’이라도 엄격하게 이끌어 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무슨 수로? 프로선수쯤 되면 자기가 알아서 해야 되는 거 아냐? 머리 굵은 사람들을 감독이 일일이 어떻게 감당해. 왜 프로야? 딱딱 칼같이 자기가 알아서 하라고 프로잖아? 누가 대신 뛰어주나?”

선배 없는 후배 없고, 후배 없는 선배 없는 게 이치다. 한국 축구를 말할 때 현역 후배들에게만 대놓고 뭐라고 그럴 수 있을까? 통칭 ‘축구선배’들에 대해 이감독은 어떤 속내를 갖고 있을까?

“(소주 원샷)
할 말 없어. 선후배 관계라는 게 한국축구의 강점도 되고 단점도 되는 데 말야. 아직까지는 존경받는 선배 없어. 그러니 말을 해도 어디 후배들한테 체면이 서서 먹혀 들어가야 말이지. 왜 존경받는 축구 선배가 없느냐? 축구로 먹고살았으면서도 축구쪽에다 뭐 내놓는 게 있어야 말이지. 나도 마찬가지고. 사회에서 어떤 분야든 그 분야에서 성공하면 좀 내놓아야 되잖아. 아직 축구쪽에는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이 없어서 그런 건지, 좌우지간 축구를 위해서 또 후배들을 위해서 넉넉한 마음으로 내놓는 사람들이 없어요.”

이감독은 “괜히 올스타전 때 한마디 했다가 우리 기자님한테 꼬투리 잡혀서 오늘 쓸데없는 얘기들 늘어놨구만”이라면서 “잘 써 줘. 나 선후배들한테 죽일 놈 돼”라고 마음좋게 웃었다. 정말 속으로는 걱정이 되는지 꼭 한마디는 넣어달라고 했다.

“내가 나 잘나서 후배들을 욕하고 야단치고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한국 축구가 세계 선진축구로 발전하려면 두가지 조건을 꼭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 왔거든. 하나는 프로축구, 그 다음에는 선수들의 적극적인 세계시장 진출이야. 축구 선진국들을 보라고. 그 두가지가 딱 돼 있어. 월드컵이란 게 결국 뭐야? 세계무대에서 클럽 유니폼을 입고 뛰던 선수들이 자기나라 국기 달린 유니폼으로 바꿔 입고 서로 다시 편을 짜서 경기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냐? 세계시장에 진출할 만한 선수가 되려면 뭐가 필요하겠어? 자기 자신에 대한 지독한 관리라구. 매스컴에서, 남들이, 여중생이 소리지르고 좋아한다고 거기에 휩쓸려 돌아가면 결국 그게 한계이고 끝이야. 소질이 있다,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들을수록 더더욱 자신한테 엄격해야 돼. 몸이 제대로 돌아갈 때 좀더 실력을 닦아서 대선수로 커야 한다구. 그런데 그게 잘 안되고 있으니까, 나도 명색이 대한민국에서 평생 축구로 밥먹은 사람인데 너무 너무 안타까운 거라.”

권태동 월간중앙 기자 <tae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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