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5억 드라마 시장 공략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정용환
베이징 특파원

사무실이 있는 빌딩의 지하층에는 작은 매점이 있다. 낮에는 손님이 없다 보니 카운터를 지키는 점원 두 명이 작은 노트북 컴퓨터에 얼굴을 박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게임광이라도 되는가 싶어 눈여겨보니 TV에서 방영한 드라마를 보느라고 정신없었던 것이다.

 요즘 베이징에선 신문 가판대나 시장의 배추 장수까지도 손님 받으랴, 계산하랴 바쁜 와중에도 반쯤은 컴퓨터 속 드라마에 빠져 있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중국에선 동영상 전문 사이트 또는 검색 사이트에 접속하면 원하는 드라마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무료인 데다 귀찮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할 필요도 없다. 접속하는 누구에게나 완전 개방돼 있는 것이다.

 우리처럼 방송국 또는 통신사 사이트에 들어가 로그인하거나 몇 천원씩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인터넷에 접속만 되면 언제든 어디서나 보고 싶은 드라마를 즐길 수 있다.

 얼마 전 영상미디어 부문을 총괄하는 광전총국에서 시청률이 가장 높은 황금시간대(오후 7~10시)에 외국 드라마와 영화를 방영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각 방송국에 정식 하달했다. 황금시간대 안방극장을 자국산으로 채우겠다는 뜻인데 한국 드라마 수출길이 막히는 게 아니냐며 지레 겁먹을 일은 아니다.

 이미 중국의 드라마 소비 시장은 빠르게 인터넷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방송국 중심의 배급 관행을 벗어나 새 루트 공략에 눈 돌릴 필요가 있다.

 지난해 말 중국의 네티즌 수는 5억 명을 넘어섰다. 5억 명의 소비자를 겨냥한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들이 해마다 100%씩 성장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킬러 콘텐트 중 하나가 드라마다.

 여우쿠·투더우·소후 등 3대 동영상 사이트에 들어가면 자국 드라마뿐 아니라 한국·일본·동남아·유럽산 드라마가 가지런히 인기 순위·장르별로 분류돼 있다. 인터넷에 서툰 노장년층도 한두 번 클릭으로 드라마를 소비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정리됐다. 일전에 만난 의류상가의 한 점원은 하루 평균 드라마 5~6편을 인터넷으로 보는 편이라고 했다. 이렇게 많은 수요를 대려면 콘텐트 확보하기도 만만치 않을 텐데 해적판이 판치는 중국답게 필시 여기저기서 무단 도용해왔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형 동영상 사이트는 나스닥 등에 상장됐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콘텐트 방영권을 확보해야 하는 등 운영을 투명하게 하도록 압박도 받는다. 국내 방송국이 판권을 쥔 드라마도 값을 치르고 인터넷에 걸고 있다. 지금은 10개가 넘는 사이트가 혈투를 벌이고 있어 제값 주고 한국 드라마를 사고 있지만 시장이 메이저 위주로 재편되면 협상 주도권이 넘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다. 조그만 국내 방송시장에서 시청률 나눠먹기에 골몰할 때가 아니다. 중국의 온라인 업계와 제휴해 중국인의 취향까지 공략한 맞춤 드라마 제작 등 우리의 강점을 살린 영상물 수출 전략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