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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친 고서, 공소시효 기다렸다가 판 60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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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5일 대전지방경찰청 대회의실에서 광역수사대 관계자들이 압수한 고서 등을 공개하고 있다. [뉴시스]

훔친 문화재급 유물을 사들여 대학교 도서관에 맡기고 공소시효가 끝난 뒤 시중에 내다 판 문화재 절도범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대전지방경찰청은 15일 문화재급으로 분류되는 유물을 몰래 팔아넘긴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 등)로 백모(63)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또 백씨로부터 유믈을 사들여 되판 황모(53)씨 등 장물업자 3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이들이 보관 중인 유물 4559점을 회수했다. 그러나 유물을 훔친 박모(61)씨는 공소시효 10년이 지나 입건하지 못했다.

 경찰에 따르면 건설업자인 백씨는 1995년 4월부터 2000년 초까지 문화재 절도범 박모(61)씨로부터 보물급 유물인 홍치6년(弘治六年) 분재기(分財記) 등 9415점을 사들였다. 분재기는 재산의 상속과 분배 과정을 기록해 놓은 문서다. 문화재 전문가의 감정 결과 이 분재기는 계유정난(癸酉靖難)에 공을 세운 문원군 류사의 부인이 1493년에 쓴 것으로, 조선전기의 분재기 자료 중 연대가 가장 앞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큰 보물급 유물로 밝혀졌다.

 백씨는 이들 문화재를 1998년초 경상도의 모 대학교 도서관에 맡겼다. 대학 측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유물을 맡길 테니 학술자료로 사용해 달라”고 부탁하는 백씨의 말에 속아 검증 작업 없이 보관해주었다.

 절도죄 공소시효(10년)가 지난 뒤 백씨는 대학 측에 “문중에 잠시 보여준 뒤 다시 가져오겠다”며 유물을 빼내 장물업자 황모(53)씨 등 3명에게 팔아넘겨 20억원 상당을 가로챘다.

 대전지방경찰청 안태정 광역수사대장은 “이들은 대학교 도서관을 (장물) 보관 장소로 악용하는 대담성을 보였다”며 “백씨 등은 박씨가 훔친 유물이 공소시효 10년이 지나면 처벌받지 않을 것으로 착각하는 등 시간이 오래 지나면 범죄 입증이 어렵다는 점을 이용한 신종 수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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