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가 양보해 한국 이익 줄었다는데 그렇다고 나머지 이익까지 포기해야 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휘두르고 있긴 하지만 손에 잘 맞는 칼은 아닌 것 같다. 민주통합당이 제기한 ‘집권 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론’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각이 대체로 그렇다. 노무현 정부에서 핵심 요직을 맡아 한·미 FTA를 추진했던 인사들이 지금은 야당 지도부가 돼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미 FTA로 인해 국민은 고통과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었다”고 말하는 한명숙 대표는 국무총리 때인 2006년 7월엔 “한·미 FTA는 새 성장 모멘텀”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물론 민주당은 나름의 근거를 제시한다. 이명박 정부가 재협상에서 대폭 양보하는 바람에 ‘이익의 균형’이 깨졌다는 점, 2008년 금융위기로 경제환경이 바뀐 탓에 개방 확대가 능사가 아니라는 점 등이다.

 전문가들도 정부의 재협상으로 자동차 부문의 관세 철폐 시한이 연장돼 우리의 이익이 감소됐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를 한·미 FTA의 폐기 사유로 삼는 건 비약이라고 본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재형(국제법) 교수는 “당초보다 이익이 조금 줄어든 건 맞지만 그래도 한·미 FTA를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우리에게 유리하다”며 “민주당의 주장은 선거철 표를 얻기 위한 전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의 국제감각이 어떤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인하대 경제학부 정인교 교수도 “자동차 부문에서 이익이 줄어든다는 건데, 그렇다고 나머지 이익까지 다 포기하는 게 과연 옳은 논리냐”며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정치판에 들어와서 이런 것들을 곡해하기 시작했다”고 비판했다.

 경제 여건의 변화 때문에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론이 나온다. 인하대 정 교수는 “금융위기라는 변수가 생겨서 대외환경이 악화됐으면 오히려 FTA 같은 특혜 협정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게 맞지 않나. 민주당은 거꾸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밖에 민주당이 주장하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 등 독소조항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한국무역협회 최용민 FTA통상실장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독소조항의 10가지 중 1개만 제외하곤 모두 노무현 정부에서 작성됐으며, 바뀐 내용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최원목(국제법) 교수도 “노무현 정부 때도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일정 부분 리스크를 감수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또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당초보다 손해 볼 부분들에 대해 누군가가 책임을 지는 수준에서 발효하는 게 맞다”고 제안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