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경색이 장기화하면서 하루살이식 대출 연장으로 어렵게 꾸려가는 기업이 늘고 있다.
더구나 2단계 금융·기업 구조조정을 앞두고 벌써부터 퇴출기업 리스트가 나도는 등 금융시장의 경색이 심화하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융자금과 회사채·기업어음(CP)등이 만기가 되면 일단 갚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만기를 연장해주더라도 하루나 사흘,일주일 단위로 연장하고 있어 기업들이 애달파하고 있다.
◇은행과 감정 싸움도=중견그룹인 B사의 자금담당 임원들은 요즘 회사로 출근하기 전에 거래 은행부터 들른다.회사 관계자는 “회사채를 1∼3일씩 연장하는 경우도 많아 금융기관 담당자와 신경전을 벌이면서 모욕을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어떤 은행은 자금담당 임원을 쳐다보지도 않고 사장이나 회장이 찾아가야 상대할 정도”라고 말했다.
대그룹 계열사인 유화업체 A사의 임원들도 지난달부터 거의 매일 은행에 출근하다시피 하고 있다.이 회사의 K상무는 “외자 유치 업무를 맡은 임원까지 인맥을 총동원해 돈을 꾸고 대출을 연장하러 은행에 쫒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모 그룹 관계자는 “4대 그룹 계열사도 부실징후 기업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그 이하 그룹 계열사는 사업 전망이나 건정성에 대부분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초단기 대출 연장이 대세=시중은행 관계자는 “두세달 전만 해도 대기업과 우량 기업에는 자금을 쓰라고 적극 권유했는데 요즘은 이마저 조심한다”며 “상당수 기업들은 진성어음 할인을 통한 자금조달 정도만 가능한 상태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은행들이 2단계 금융 구조조정을 앞두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질 일을 벌이지 않으려는 분위기”라며 “신규 대출은 물론 회사채 차환 발행 등으로 찾아오는 기업체 사람들은 가급적 피하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지난 8월 이전만 해도 부실징후 기업에만 초단기로 대출금의 만기를 연장해주던 것이 최근에는 그 대상이 크게 늘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외국 은행들이 해외에서 수주한 사업을 담보로 잡는 형식으로 자금을 대출해 주겠다는데 국내 은행의 보증을 얻지 못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더 어렵다=대구에서 의류를 생산하는 대성어패럴은 최근 거래은행에 대출을 신청했다가 보증 금융기관의 보증서를 떼오라는 은행측 요구로 발길을 돌렸다.담보가 없어 보증서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회사 강성진 사장은 “정부가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중소기업에 12억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지만 재무구조가 나쁘면 여전히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영월에서 석회비료를 생산하는 유림종합석회공업㈜는 은행 돈을 빌리는 것 자체를 포기한지 오래다.이 회사는 봄과 가을에 매출이 몰리는 특성 때문에 최근 몇달째 근근히 회사를 꾸려가고 있다.
이 회사 이강호 상무는 “금융권의 대출 심사가 워낙 까다로와 포기한 채 아쉬운대로 사채(私債)를 끌어쓰곤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 특수화학 용기 제조업체인 L사는 원자재 가격이 올초보다 50% 이상 급등해 은행을 찾았지만 대출을 받지 못해 공장 가동률을 60%대로 낮추는 식으로 조업을 단축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지난달 1백개 중소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자금사정 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93을 기록했다.
중소기업의 자금사정 BSI는 4월 101에서 5월 99→6월 96→7월 95로 줄곧 낮아져 자금사정이 계속 어려워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BSI가 100 아래면 전달보다 사정이 나빠졌음을 뜻한다.
◇빠른 구조조정이 해법=LG그룹 관계자는 “2단계 금융·기업 구조조정을 앞두고 금융시장이 마치 태풍전야 같다”며 “부실징후 업체 등에 대한 리스트가 나돌아 주변 업체와 유사 업종까지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분명한 기준을 정해 부실 기업을 빨리 정리해야 엉뚱한 기업이 피해를 보지 않을 것”이라며 지적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병욱 경영조사팀장은 “부실 기업을 선별 정리하되 나머지 기업에게는 대출 만기 연장이나 최사채 발행 등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금융 시스템이 하루 빨리 회복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