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마르소 "제겐 불교철학이 딱 맞아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80년 영화〈라붐〉이후 청순함의 대명사로 젊은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소피 마르소(34). 어느새 데뷔 20년이 됐다.

이제 청순함 대신 다섯 살 아들을 둔 성숙한 여인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는 남편 안제이 줄라프스키가 감독한 영화〈피델리티〉의 홍보차 내한했다.

소피가 주연을 맡은〈피델리티〉는 결혼 후 육체와 마음의 순결 중 어느 것이 중요한 지를 묻고있는 작품이다.

1. 길상사에서

가을 햇살은 맑았다. 덕수궁에는 때마침 야외학습을 나온 학생들로 가득했다. 이곳 저곳을 둘러 보려했으나 밀려드는 아이들의 사인 공세에 한발짝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지체하다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어디로 갈까 물색하던 차에 소피 마르소가 "절에 한번 꼭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곧장 차를 타고 삼각산에 자리한 길상사로 향했다.

"절에는 왜요?" "언젠가 불교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참 좋게 느꼈어요. 지혜를 강조하는 불교 철학이 그때 그때 상황에 최선을 다하자는 제 방식과 맞다고 생각했죠. "

그래서인지 불교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전날 인사동에 나갔을 때도 골동가게를 돌아보며 불상만 있으면 발길을 옮길 줄 몰랐고 나중에 다시 들러 작은 불상을 하나 샀다. 1991년 한국을 찾았을 때는 스님들이 들고다니는 바랑을 하나 구입해 갔는데 파리에서 줄곧 핸드백으로 애용했다고 한다.

길상사는 일주문과 극락전 공사가 한창이었다. 트럭이 절 안에 들어 앉았으니 절을 감상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산사 주변 우거진 수풀 사이로 은은하게 비치는 빛이 고와 소피는 무척 즐거워했다. 바람 따라 이곳 저곳을 산책하고 있을 무렵,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스님이 지나다 말을 건네왔다.

"아이, 소피 마르소 아닙니까?" 어!스님이 소피 마르소를 알아보시네…

"아이고 반갑습니다. 전에는 살이 통통했는데 날신해졌구만요." 소피도 낯설지 않은 표정이었다. 스님은 "학교 다닐 때 사진까지 책에 붙이고 다녔는데…" 라며 겸연쩍어 하면서 소피와 사진도 한장 찍었다. 속세를 등진 그에게 소피는 오랜 만에 느끼는 옛 추억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2. 배우의 길

소피는 배우란 직업이 불행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고 한다. 일 자체가 스스로를 보여줘야하는 직업인데다 끊임없이 야망을 가져야 해 부담스럽다는 설명이었다. 또 너무 알려져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주는 거추장스러움도 거론했다.

"20년 동안 상승할 때도 있고 안 그럴때도 있었죠. 그 과정에서 많을 것을 배워요. 요즘 전 어쩌면 최악의 순간을 기다리며 사는지도 몰라요. 그걸 또 딛고 일어서는 게 의미가 있잖아요." 그는 일이 어려워지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할 정도였다.

"서른이 넘고 달라진 것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입을 다물려다 싱긋 웃으며 "달라져야죠. 매일 체중계에 올라가요. 그리고 스트레칭과 맨손 체조를 1시간 30분씩 해요" 라고 털어놓았다.

최근 소피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냈다.〈007언리미티드〉〈브레이브 하트〉등이 그렇다.

의도적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느냐는 물음에 소피는 작품이 마음에 들었고 새로운 느낌이어서 안 할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다시 프랑스에서 "왜 우리를 두고 떠났느냐" 며 섭외가 쏟아지더란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왜 배고파 죽겠을 때는 제의를 안하고 지금 야단이냐고."

3. 한국 음식

소피가 한국에 오면서 다짐한 것이 하나 있다. 모두 한식만 먹겠다는 의지였다. 그와 두 끼를 함께 했는데 메뉴가 각각 한정식과 갈비였다.

첫 한정식 집에서 "한국 음식이 처음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소피는 무시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 방한때 한식을 맛있게 먹은 뒤 파리에서도 한국 식당을 찾아 불고기와 김치를 즐긴다고 했다. 소피는 특히 김치를 좋아했다. "김치는 매운 맛과 씹히는 촉감으로 먹는거죠" 라고 말할 정도다.

음식을 먹으며 "맵다. 맵다"를 연발하지만 일단 젓가락질이 안정돼 있었고 심지어 된장·오징어 젓갈·대구탕까지 마다않았다. 젓가락질에 대해선 "배고프면 다 하게 돼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옛 말에 음식 먹는 것에 그 사람의 습성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소피의 호기심과 도전성을 보며 그게 열정적인 연기로 이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