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국내 타자의 자존심 이병규

중앙일보

입력

‘히팅머신’ 이병규가 한국타자들의 자존심을 세웠다.

시드니에 가기 전만 해도 이병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1번 타자감이었다. 방콕아시안게임과 시드니 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 한국프로무대에서 그가 보여준 활약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그러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탈리아와의 첫 경기에 나선 1번 타자는 박종호였다. 이병규의 연습경기에서의 부진과 박종호의 선전이 동반됐기 때문이다.

이병규의 자존심이 용납치 않았다. 1번타자로 복귀하기 위해 열심히 배트를 휘둘러댔다.

17일 이탈리아전 경기 종반에 대타와 호주전에 9번타자로 출전했던 이병규는 꾸준히 안타를 쳐내며 결국 쿠바전부터 1번타자로 출전하기 시작했다.

1번타자로서의 출발도 좋았다. 1회초 쿠바의 에이스 콘트라레스로부터 좌전안타를 빼앗은 것.

이후 이병규는 한국대표팀의 확실한 1번 타자로 자리잡았다. 경기 중반부터 뒷심이 떨어져 안타를 쳐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1회부터 안타를 쳐내는 이병규의 타격에 한국은 기선제압할 수 있는 찬스를 여러 번 잡았다.

특히 이병규의 진가는 일본전과 미국전에서 더욱 더 발휘됐다.

일본과의 예선전에서 1회 선두타자로 나와 마쓰자카로부터 안타를 뽑아내 1회 대량득점의 발판을 마련한 이병규는 9회말 2사 1,2루에서 다구치의 우전안타를 잡아 홈에 정확히 송구해 늪에 빠질 뻔한 한국야구를 건져내는 일등공신이 됐다.

미국과의 준결승전에서도 3회 통렬한 적시 2루타로 미국벤치를 긴장시켰던 이병규는 일본과의 3-4위전에서도 1회에 비록 후속타 불발로 득점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마쓰자카로부터 좌전안타를 얻어내 선두타자로서의 자기의 몫을 톡톡히 해냈다.

이병규의 이번 대회 예선 성적은 29타수 10안타 0.345로 팀내 4위. 준결승과 3-4위전에서는 8타수 3안타로 그의 방망이는 힘차게 돌아갔다.

공격력 빈곤에 허덕이던 한국팀에게 이병규는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였다.

이병규의 활약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5할6푼에 홈런 4개로 드림팀 I 타선의 핵심역할을 했다. 이어 지난 해 시드니 올림픽 아시아지역예선에서는 5할의 고타율로 대회 MVP에 오르면서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었다.

대학(단국대)시절에도 줄곧 국가대표로 활약했으며 3학년인 95년부터 프로구단으로부터 스카우트의 표적이 되기도 했었다.

이병규는 국내프로야구에서 올시즌 최다안타 2위(155개), 타율 9위(0.321)를 달리며 안과 밖에서 출중한 기량을 뽐내는 선수로 인식되고 있다.

‘히팅머신’ 이병규는 방콕아시안게임과 시드니 올림픽에서 얻은 메달에 의해 ‘메달머신’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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