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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질과 짜깁기, 유니크한 재창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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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호 27면

얼음여왕 Casta Diva, 2006, vimalaki.net 마리아 칼라스의 ‘성결한 여신(Casta Diva)’을 배경으로 1950년대 한국 영화의 여성 이미지를 보여 준다.

잉그리드 버그먼이 손에 찻잔을 든 채 뚫어지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20세기 영화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이 만든 완벽한 흑백 사진이다. 잠시 후 버그먼의 얼굴이 줌인(zoom-in)되어 내게로 다가온다. 버그먼의 고혹적인 얼굴에 드리운 세기적 불안이 내게 전이되는 듯하다. 그런데 대사가 좀 이상하다. 어떤 남자가 흥분해 소리친다. 버그먼은 이제 숨소리조차 들릴 듯 가까이 왔다. 남자는 유대인 종족에 대해 마구 저주를 퍼붓고 있다. 영화 ‘오명(Notorious)’(1946)의 스틸 컷과 ‘전당포’(1964)의 오디오 파일이 겹쳐지면서 ‘여성의 정체’(2006)가 드러나고 있다.

시대의 안테나, 디지털 아트 <11> 노재운의 웹 시네마

웹 시네마라고 부른다던가? 1990년대 후반부터 이 같은 웹 작업을 꾸준히 해온 노재운 작가, 말투가 느릿느릿한 경상도 사내였다. “뭘 알고 싶은 거지요? www.vimalaki.net에 가면 대충 보실 수 있는데.” 작가의 퉁명스러운 대꾸다. 나는 그가 왜 이런 작업들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인터넷의 드넓은 바다에서 이미지와 영상, 오디오 파일을 마치 낚시질하듯 낚아 올려 작가 특유의 방식으로 재창조한다. 작가가 새로 만드는 것은 타이틀 정도다. 그런데 누가 이런 작업을 살까?

의구심을 품은 채 나는 작가의 사이트 ‘비말라키’를 찬찬히 둘러본다. 일반인이 붓다에게 진리를 가르쳐준 불교 경전 ‘비말라키티 수트라’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한다. 먼저 ‘CASTA DIVA(카스타 디바)’라는 제목을 클릭해 보았다. 오페라 ‘노르마’의 아리아를 타고 마리아 칼라스의 비극적 음성이 영혼을 울리는 가운데, 50년대 한국 영화 ‘운명의 손’ 여주인공이 권총을 들고 있다. 바람에 날리는 미사포 아래 드러난 그녀의 얼굴에는 사랑의 배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사제 노르마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숭고한 희생도 못하고, 그렇다고 배신남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 만큼 모질지도 못한 우리네 여인이 애처롭다.

한껏 감정이입을 하려는데, 이거 뭐야, 스크린이 자꾸 블랙아웃되어 버린다. 게다가 여주인공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픽셀들이 무자비하게 깨져 나가는 게 아닌가. 칼라스 불후의 아리아로 고조된 청각과 깨어진 시각적 환상 사이에서 감정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나는 당혹스럽다. “네트워크에 문제가 있나요? 아님 컴퓨터 사양이?” 당황하는데, 작가는 싱긋 웃기만 한다. 그러면서 몇 작품 더 보라고 권한다.

여성의 정체(Identification of a Woman), 2006, vimalaki.net히치콕의 영화 ‘오명’에 나온 잉그리드 버그먼의 스틸컷과 영화 ‘전당포’의 주인공 목소리를 결합시켰다.

인터넷 서핑을 통해 수집한 북한 미녀응원단의 이미지가 ‘아름다운 스위스 아가씨’라는 싱그러운 요들송과 썩 잘 어울리는 ‘FATAL BEAUTY(치명적 아름다움)’(2004)는 천안함·연평도 사태를 미리 예견한 걸까? 그런가 하면 북한 영변 핵시설 위성사진과 함께 흐르는 양돈장에 관한 뉴스에는 작가의 유머감각이 돋보인다. ‘3 OPEN UP(세 개의 개방)’이라는 2001년 작품이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역사적인 북한 방문 때 남측 대표단이 하필이면 양돈장을 공식 방문했었나 보다. 큰 수퇘지를 본 아나운서가 ‘아, 이건 씨돈, 종돈이군요!’라며 감탄하는데, 화면으론 위성에서 촬영한 핵 미사일 발사대가 보인다.

웹은 그에겐 데이터로 이루어진 자연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무한한 정보의 바다에서 몰려오는 정보들을 ‘자기화’할 수 있느냐는 거지요….” 노 작가가 입을 연다. ‘자기화’라니? 깜깜한 화면이 나오거나 픽셀이 깨어지는 것? 아님, 밑도 끝도 없는 내러티브? 노재운의 변은 이렇다. “우리는 고해상도와 초연결성을 당연시하는 시대에 살고 있죠. 할리우드식 기·승·전·결 이야기 구조와 연출에 길들여져 있어요. 사람들은 떼지어 어느 한 방향으로 확확 몰려다니죠. 하지만 미디어가 줄 수 있는 게 그게 다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가 택한 길은 인터넷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저해상도 영상 소스를 가지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동원해 열린 이야기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프로그램에 의한 기계적 연결 대신, 사고와 감각에 의한 자유연상이 나와 세계를 연결시킨다. 미디어는 단지 상상의 단초들만 제공할 뿐,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인간 주체들이다. “이건 맘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예술이에요. 어려운 기술은 하나도 없거든요.” 작가가 힘주어 말한다. 그는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만인 예술가 시대’를 꿈꾸는가?

노재운의 작품엔 거대 미디어에 대한 해독제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오늘날 미디어 상품은 나를 소비자, 기껏해야 사용자로 만든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상품들을 헐레벌떡 쫓아다니기에 바쁜 사용자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내게 말을 건다. 강요하지 않는 방식으로 부드럽게 나를 고정된 의식의 틀에서 풀어준다. 새로운 여행을 기대하는 나를, 작가는 그러나 문 앞까지만 데려다 준다. 나머지 여행은 각자의 몫이다.

“지구는 이제 바다입니다. 땅도 바다이고요.” 노재운은 선언한다. 아무것도 고정된 것이 없는 망망한 대양에서 우리는 어떻게 항해하고 있는가. 사람들로 꽉꽉 들어찬 낡은 대형 여객선에서 1등칸에 오르려고 아등바등하고 있지 않는가? 지나가던 작은 돛단배에서 노 작가가 나직이 말한다. “참된 자유란 그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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