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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향기에 취하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57호 35면

"보통 ‘찍히다’라는 말은 나쁜 뜻으로 쓰이지만 사진에 있어서는 다릅니다. 사진이 찍힌 사람은 무한한 삶을 살게 됩니다. 특히 같이 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커다란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일흔일곱 분이 한 사진첩에 얼굴을 담았다는 것은 대단한 인연입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 모이신 분들을 보니 사진 쪽이 더 나은 것 같네요.”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의 축사를 경청하던 좌중에 일순 폭소가 터졌다. 7일 오후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개막한 ‘인연의 향기-사진작가 이은주를 사로잡은 77인’ 사진전 및 출판기념회 자리다.

본지 연재 ‘이은주의 Portrait Essay’ 전시회

사진작가 이은주씨는 2010년 7월 18일 원로 공연평론가 박용구 선생부터 2011년 11월 6일 이왈종 화백까지 중앙SUNDAY 매거진 ‘Portrait Essay-이은주의 사진으로 만난 인연’ 코너에 국내 대표적인 문화계 인물들의 사진과 관련 에피소드를 연재했다. 이를 책으로 묶어 출간하고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 전시회를 열게 된 것이다.

오후 5시 개막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두툼한 외투 차림의 원로·중견 문화인들이 속속 2층 전시장으로 올라왔다. 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송자 명지학원 이사장,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사진작가 황규태, 이시형 차움 명예원장, 국악인 안숙선, 구삼열 2012여수엑스포 유엔 대표 등이 사진을 보며 덕담을 나눴다. 김영수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 윤병철 우리금융지주 초대 회장, 영화배우 안성기, 한국화랑협회 표미선 회장 등은 화분을 보냈다.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은 “사진으로 좋은 인연을 맺게 해준 작가에게 감사드린다”며 “우물을 판 사람의 공로를 잊으면 안 된다”는 말로 작가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앞줄 왼쪽부터 박인자 한국발레협회장·김혜식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 명예회장·김정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조윤선 국회의원(새누리당)·이은주 작가·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김영호 단국대 석좌교수·연극배우 손숙·손봉숙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이사장. 뒷줄 왼쪽부터 연극배우 박정자·양미을 (재)양준호장학회 이사장·한복디자이너 이영희·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소설가 조정래·김봉태 화백·양수화 글로리아 오페라단 단장·이종구 심장클리닉 원장·윤명로 화백·시인 김초혜·신갑순 삶과꿈 체임버오페라 싱어즈 대표.

이은주 작가는 국립무용단의 ‘허생전’ 공연 사진을 촬영해 1981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국전)에 출품해 사진부문 대상을 받았다. 이후 꼬박 30년간 공연 무대 사진과 예술가들의 초상을 주로 찍어 왔다. “연재하는 동안 사진 인생 30년을 함께한 분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분들과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끄집어내며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습니다. 연재를 위해 집안 구석 곳곳에 숨어 있던 젊은 날의 사진을 찾아낼 적마다 옛날에 이랬었지 하며 덩달아 젊어지는 것 같았어요.”
이 작가는 “돌아가신 법정 스님, 강원용 목사님과 백남준 선생님은 사진 촬영할 때 그 모습 그대로 제 가슴속에 살아계신다”며 “연재를 하는 동안 김창실 선화랑 대표와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이 운명을 달리하셔서 좀 더 찾아뵙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고 털어놓았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유명인사와 인연을 맺게 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좋은 인연이 계속 꼬리를 물고 좋은 관계로 이어졌다”고 들려주었다. 그는 “어려운 시절 당시 가난한 예술가들의 사진을 무료로 찍어주면서 인연이 시작됐는데, 당시 돈을 받았더라면 이런 인연은 맺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방명록에 소설가 조정래씨는 이렇게 적었다. “왔다 가는 매듭 매듭이 인연이고 우리네 삶은 긴 인연의 강이다. 그 기억을 새롭게 살리는 것은 사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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