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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태 국회의장과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의 거듭된 부인과 거짓말. 일반적으론 돈봉투 사건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은폐 시도로 비친다. 하지만 단순한 은폐공작만으론 ‘쉽게 드러날 사안을 노련한 정치인들이 왜 발뺌하려 했을까’라는 의문에 답하기 어렵다.
근본적으론 돈봉투 주고받는 걸 범죄행위로 의식하지 못했다는 데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두 정치인 모두 돈으로 움직이는 구시대 정치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죄의식 대신 ‘관행이다’는 인식을 지녔다는 것이다. 김 수석이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한 것도, “내가 무슨 죄인이냐”고 항변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또 박 의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발끈해하거나, 억울하고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박 의장의 비서 출신인 고명진씨의 진술 한마디에 두 정치인의 방어선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물러날 시점도, 책임질 시점도 찾지 못한 채 계속 벼랑을 향하다 추락한 것이다.
실제 박 의장은 사퇴 의사를 밝히기 하루 전날인 8일 밤 의장 공관에서 고씨를 만난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고씨는 새누리당 고승덕 의원 측으로부터 전당대회 당시 돈봉투를 돌려받았다는 의혹을 샀던 인물이다. 국회와 새누리당 관계자 등에 따르면 고씨는 박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고승덕 의원에게 전달했던 300만원을 내가 돌려받은 사실과, 그런 사정을 김효재 수석(당시 박희태 대표 비서실장)에게 알렸다는 사실을 모두 검찰에서 진술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박 의장은 이 얘기를 들은 뒤 사퇴를 결심하고 기자회견을 13일에 하도록 지시했다는 게 국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고씨의 검찰 진술 내용이 바로 다음 날 중앙일보(2월 9일자 1면) 등에 보도되면서 사퇴 발표가 앞당겨지게 됐다고 한다. 게다가 박 의장은 최근 측근들과 대책을 논의하면서 고씨와도 접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박 의장 측이 고씨에게 검찰에서 허위진술을 하도록 했거나, 말을 맞췄을 가능성 등이 검찰 수사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고씨의 진술은 한 달여 동안 고승덕 의원과 진실게임을 벌여온 김 수석의 운명도 결정했다. 돈봉투 심부름을 한 고씨가 검찰에 ‘윗선’을 털어놓으면서, 자신에 대한 검찰 소환이 불가피해지자 김 수석도 결국 손을 들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이름이 거명된 지난달 6일 기자들과 만나 “전혀 사실무근이다” “고승덕 의원과는 18대 국회에서 말 한마디를 섞거나 눈길 한번 준 적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었다. 그러자 고 의원은 이틀 뒤 검찰에 소환됐을 때 “전당대회 이튿날인 2008년 7월 4일 보좌관을 통해 당 대표실로 300만원을 돌려주자 오후에 박 의장 측으로부터 ‘왜 돌려준 것이냐’는 확인 전화를 받았다”며 전화를 건 당사자로 김 수석을 지목했다. 이 주장이 나온 뒤에도 김 수석은 “ 그 사람과는 절대 대면(對面)으로건, 전화로건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고 거듭 부인했다. 9일 자정쯤 서울 하월곡동 자택 입구에서 중앙일보 기자와 만났을 때도 그는 “내가 무슨 죄인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박 의장도 그랬다. 돈봉투 사건이 보도된 날 출근길에서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고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사흘 뒤인 1월 9일 아시아·태평양 의회 포럼 총회 참석차 찾은 일본 도쿄에서도 “전혀 모르는 일이다. 혹시 보좌관 등 누가 했나 싶어서 알아봤는데 아무도 돈을 준 사람도 없고, 돌려받은 사람도 없다고 한다. 무슨 말을 더 하나”고 더 강력히 부인했다. 이어 지난달 19일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면서는 “발생한 지 4년이 지난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다”고 물러섰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김 수석은 2006년 이명박 대통령 대선 캠프의 모태인 안국포럼에 참여한 뒤부터 이 대통령 직계로 분류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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