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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3.칼을 베어버린 꽃잎 (1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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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눈멀었던 내 앞에 다시 열린 세상이 예전의 그 세상 맞소? 하늘과 땅이 뒤집히고 별자리가 틀어지는 것 같은 충격이오.”

 의자에 앉아 있는 김승과 그의 혁명 동지들이 저승 세계 사람들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흉측한 김승의 몸이 그걸 증명했다. 심한 화상으로 온몸이 문드러지다시피 한 김승은 분명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닌 지상의 인간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가 한 말은 열 몇 해 전 이 땅에서 벌어진 참사에 관한 거였다. 그것이 사실인지, 날조인지를 분별해내는 일은 감찰인 내 몫이었다.

 “진실을 알지 못하던 때와 알게 된 이후의 세상은 다른 것이오.”

 김승은 옷매무새를 고쳐서 흉터를 덮었다. 용케 화상을 비켜간 준수한 얼굴은 사람을 사로잡고 조복시키는 기운으로 넘쳐났다. 큰 인물들이 갖추고 있는 압인지기(壓人之氣)였다. 삭발한 머리의 이마는 높았고 눈빛은 강렬했다. 경교승들이 입는 흰 가사장삼이 썩 잘 어울리는 풍모였다.

[일러스트=이용규]

 “무엇이 진실인지는 더 따져봐야 하오.”

 “나도 그걸 원하오. 그래야 나를 진심으로 이해할 테니까 말이오.”

 “확인하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우선은 내가 데려왔던 인보 스님의 주검부터 봐야겠소.”

 최이 집정의 간자 노릇을 해 왔다는 말이 사실일지라도 그는 수기 스승의 시자였고 나의 길동무였다. 그런 그가 갑작스레 죽었다. 내가 눈먼 동안에. 보존 처리한 주검일망정 마땅히 내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당연히 그게 우선이지. 아침 먹고서 안내하리다.”

 곧 전 장군의 기별이 왔고 부엌 식탁에 모였다. 탁연, 쌍둥이 형제, 거지 왕초는 물론 가온과 전 장군 내외까지 한 식구처럼 기다란 식탁에 둘러앉았다.

“한 방울의 물에도 세존의 은혜가 스며 있고 한 톨의 곡식에도 만인의 땀이 배어 있습니다. 이 밥이 우리의 생명을 살리듯 우리도 세상의 밥이 되어 세상을 살리게 하소서.”

 두 손을 모은 좌중 앞에서 가온이 그렇게 기도했다. 언제 들어도 심령을 울리는 오묘한 음성이었다. 불가에서도 이와 흡사한 식사 기도가 있었다. 문제는 이들이 말하는 세존이 누구냐에 있었다. 이들이 말하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는 석가모니 부처가 아니라 예수를 가리켰다. 아무래도 좋다. 유가는 공자라고 할 것이고 도가는 노자나 장자라고 할 테니까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다만 동굴 예배소에서 들었던 찬송가 가사에서처럼 왕 중의 왕이며 여러 세존 가운데서도 진리의 황제인지는 검증해봐야 할 일이다.

인보의 주검이 있다는 의원의 집은 바로 윗집이었다. 바위벼랑 아래 초가집으로 우리가 찾아갔을 때 의원은 입원해 있는 환자들을 회진하고 있었다. 팔다리가 잘리거나 화살에 맞아 곪아터진 환자들이었다. 전쟁과 노역에 동원됐다 입은 상처였다.

 “소군마마, 아침 자셨습니까?”

 김승이 의원 영감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그럼요. 깐깐한 승정께서도 오셨구려. 어젯밤에 그 짜증을 내고 생난리를 치더니 어느새 눈까지 떠서.”

 그가 이쪽 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넉넉한 미소를 지었다. 눈이 안 보일 때는 잘 몰랐는데 마주 대하고 보니 기품이 넘쳐났다. 백발과 수염이 학처럼 날리는 의원 영감은 도골 선풍이었다. 나이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얼굴이었지만 팔십은 넘어 보인다.

 “지밀 승정, 소군께 정식으로 인사 올리시오. 내 일을 발 벗고 나서서 돕고 계신 선사(善思) 소군 어른이시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소군(小君)은 대군과 배가 다른 황족으로 승려가 된 왕자를 가리켰다. 이 의원 영감이 선사 소군이라면 명종 황제의 서자로 금상(今上·지금의 임금)인 고종의 작은아버지뻘이다. 고종의 아버지이자 선대왕이었던 강종은 선사 소군의 배다른 형이었다. 황족인 소군들은 승려가 돼서도 머리를 기르고 황궁을 출입하며 온갖 권력과 호사를 다 누렸다. 최이 집정의 아버지 최충헌은 소군 10여 명을 모조리 절집으로 내쫓았다. 명종을 폐위한 뒤에는 소군들을 모조리 섬에 유배 보내버렸다. 선사 소군의 유배지가 이곳 변산이었을 리는 없다. 어쩌다 이곳까지 흘러 들어와 의원 노릇을 하게 됐는지 모르지만 최씨 무인정권 세력들과는 원수지간이었다. 김승과 자연스럽게 동지가 된 이유일 거였다.

 “소승이 몰라 뵈었습니다.”

 나는 저간의 무례를 용서해달라는 뜻으로 합장했다.

 “허허허. 눈이 안 보였으니 몰라 뵐밖에요.”

 그는 당혹스러워하는 나를 그렇게 눙쳤다. 나는 얼굴을 붉혔다. 시골 늙다리 의원이라는 선입감 때문에 그만 진면목을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뭇 생명을 언제나 부처로 대해야 진짜 중이지요. 우리 마을은 신분을 따지지 않는 한 형제자매들이니 괘념치 마오.”

 그의 하심(下心)은 가식으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며칠 동안 겪었던 그는 영락없는 시골 의원 영감이었다. 절집과 황궁을 넘나들며 호사를 누렸던 지난날의 습이 남아 있다면 이런 마을에서 인술(仁術)을 펼칠 수 없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알량한 승정 벼슬을 으스대고 까칠하게 굴었던가. 참 가소로웠을 게다. 하지만 그는 나를 한결같이 지극정성으로 병구완했다. 폭포에 갔다 쓰러지고 깨어나서는 그를 업신여기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그는 지혜롭게 늙어가는 노장답게 담담히 받아냈다. 당장 호통 칠 수 있는 신분이었음에도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어떤 힘일까. 무엇이 그를 이렇게 변화시킨 걸까.

 그가 내게 바투 다가와 내 눈꺼풀을 손으로 벌려보았다.

 “씻은 듯이 나았구려. 어쩐다? 그 스님 주검은 아직 염장하지 못했는걸.”

 다시 한 번 웃어 보인 그가 산 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행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과 합류하는 내 발바닥이 간지러웠다. 엊저녁만 해도 나는 날이 밝는 대로 인보의 관을 수레에 싣고 이 지옥을 벗어날 참이었다. 그래서 인보의 주검을 소금에 절여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지옥의 순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뒤란으로 돌아가자 석굴이 나타났다. 관솔불을 밝힌 석굴 안은 냉기가 돌았다. 자연 석굴 안에 여러 갈래의 인공 석굴이 뚫려 있었고 진한 당귀 냄새가 풍겼다. 석굴 안에 약재들을 쟁여놓았던 것이다. 그중 제일 깊숙한 동굴 속에 관 하나가 놓여 있었다. 관 뚜껑을 열고 관솔불을 가까이 비췄다. 인보가 웃고 있었다. 핏기 가신 알몸뚱이로 편안히 누워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연근 우려낸 소주로 적셔두었기 때문인지 부패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사반(死斑) 얼룩이 더러 보일 뿐 중독된 입술까지도 멀쩡했다. 소주로 닦아낸 모양이었다.

 “강도로 실어갈 테요? 그럼 염장을 합시다.”

 선사 소군은 곧 염장할 기세였다. 왕자의 신분으로 이 궁벽한 산골에서 의원 노릇 하는 것도 심한데 주검까지 만지는 일을 하다니 민망했다.

 “아닙니다. 사인만 확실하다면 다비해서 분골함에 담아 가겠습니다.”

 나는 인보의 주검에 다가가 입을 열어본다. 입술 안이 검다. 잘 모르지만 중독이 확실해 보인다.

 “우리 마을에 이 스님을 독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지밀 승정, 이제 짐작할 테지만 내가 마리아와 예수 판화를 대장도감 수기 도승통 앞으로 보낸 건 처음부터 지밀 승정을 불러 내릴 생각에서였소. 수기 도승통이 몸소 여기까지 올 리는 만무하고 당연히 승정과 인보 스님이 올 거라고 예상했소. 내가 아쉬워서 불러들여놓고 왜 해코지를 하겠소. 더구나 아무 죄 없는 철부지 승려를 말이오.”

 김승이 소군의 말을 받아 일러줬다.

 “인보에게 죄가 없다니요? 최이 집정이 심어놓은 간자였다면서.”

 나는 김승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최이의 간자가 어디 한둘이오?”

 “인보가 최이에게 이곳 실상을 낱낱이 보고하면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될 텐데?”

 “그야 인보 스님뿐이겠소? 지밀 승정도 요주의 인물이긴 마찬가지지요. 오히려 승정이 더 위험한 인물이지요. 사실 인보 스님 같은 이를 매수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오. 지밀 승정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 더 어렵지요.”

 인보의 주검 앞에서 김승이 천연덕스레 웃었다.

 “결국 인보는 유도화 향기에 취해 스스로 저승길을 찾아갔다는 거로군요.”

 “그랬다고 보오.”

 “난 인보가 폭포 산막에서 밤을 지냈다고 봅니다. 가온의 어머니가 산다는 산막에서요.”

 “글쎄요. 필요하다면 다시 가보시오. 약초골 공방도요. 편지가 거기 내 쪽방에 있었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던 게 편지였다. 그런데 김승이 먼저 그 편지 얘기를 꺼냈다. 감추고 꺼리는 것 없이 모든 걸 공개하겠다는 뜻 같았다. 나는 당장 그곳에 다시 가고 싶었다.

 “이 관은 당분간 이대로 두지요.”

 나는 인보의 관 뚜껑을 덮었다.

 동굴을 나온 나는 김승과 함께 말을 타고서 약초골로 향했다. 가까이서 보고 느끼는 마을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팽나무 그늘 아래 모정에서는 노인들이 바둑을 뒀고 공터 마당에서는 아이들이 공기놀이나 제기차기를 하고 있었다. 협착한 산골치고는 제법 넓은 논과 밭도 풀어져 있었다. 거기서 자라나는 나락과 감자, 콩, 수수는 튼실해보였다.

 삼거리 주막집, 도장바위가 있는 실상사 골짜기를 지나 연못에 다다랐다. 인보의 시신이 발견된 현장에는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그윽한 향기를 뿜어냈다. 향기보다 더 마음을 사로잡는 게 빛이었다. 약초골 산 빛깔, 하늘 빛깔, 연꽃 빛깔 위로 쏟아져내리는 찬란한 빛이었다.

 뛰어들고 싶었다. 나라도 당장 연못 속에 뛰어들고 싶었다. 새벽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나는 가운데 저 빛이 뻗치기 시작하는 순간과 만났다면 더 그랬을 게다. 게다가 인보는 유도화 향기에 취해 있던 상태였다. 숨어 있던 본능을 흔들어 깨우는 치명적인 그 향기를 나도 체험했었다. 꽃잎과 닿는 손끝에서 눈이 열리고 천상의 음악 소리가 났다. 나체의 선녀들이 내려와 향기로 목욕하는 무릉도원이었다. 관 속에서 인보는 웃고 있었다. 웃으며 죽었다는 얘기다. 타살이거나 고통스럽게 죽었다면 절대 그런 표정이 나올 수 없다. 인보는 왜 이 연꽃 밭에서 숨을 멈춘 것인가. 어차피 이승에서 죽음은 흔해빠진 일이다. 전쟁 통에 죽음은 발아래 차여 뒹굴고 불안은 먹장구름처럼 세상을 뒤덮고 있다. 의미 없고 맹목적인 생을 무작정 연장하는 것만이 옳은 일일까. 맹물처럼 싱겁고 무료한 일상에서 극도의 쾌락과 절정의 아름다움을 만났다면 그 순간 삶을 정지시키고 싶지 않을까. 열락에 빠진 절정의 순간 문득 고통 없이 숨을 멈춘다면 열반에 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홍련과 백련이 흐드러진 이 연꽃 밭이야말로 다비장이다. 그렇다. 저 연꽃들은 이글거리는 불꽃을 닮았다. 향기로운 불꽃 속에서 웃으며 생의 최후를 맞은 인보는 행복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아름다운 자살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모든 생명활동이란 정점에 다다른 이후부터는 시나브로 죽어가는 것이 아니던가.

 “이제 그만 가봅시다.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게 인생이라면 인보 스님은 썩 괜찮은 최후였다고 보오.”

 김승이 공방 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당당한 앞모습과 달리 뒷모습은 참 쓸쓸해 보였다.

 둥그런 성채 모양으로 된 공방은 부산했다. 말에서 내린 김승은 공방들 틈에 낀 쪽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조용하고 차분한 발걸음이었다. 일하고 있는 장인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앞이 열린 작은 사물함들과 작은 침상이 놓인 쪽방은 반듯하고 정갈했다. 사물함에는 공예품 물목이나 설계도, 제작 주문서 따위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들창 밖으로는 둥그런 마당과 공방들이 보였다.

 “왜 그 귀한 편지를 이곳에 두었던 거요?”

 “본래는 내 숙소 서재에 보관해 왔었소. 며칠 전 지밀 승정이 곧 내려올 것을 생각하며 꺼내 보다가 여기까지 지니고 오게 됐고 저 속에 넣어뒀던 거요.”

 “여기다 편지를 둬서 인보 스님 눈에 띈 거 아니오?”

 “그 스님이 이 방에 올지 누가 알았겠소.”

 인보가 어떻게 이 쪽방에 들어왔고 그 편지를 찾아낸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쨌거나 그 편지를 손에 넣은 인보는 공명심에 사로잡혀 자못 흥분했을 터였다. 최이에게 아니, 어쩌면 내게 전해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진실은 그의 죽음과 함께 묻혀버렸다.

 “그 편지 어딨소?”

 내가 묻자 김승은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주었다. 무인집권기 고려 문인의 자존심이었던 백부 유승단의 묵적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세필로 휘갈겨 쓴 간찰 말미에 백부의 수결(手決)이 또렷했다.

“그 편지 가지시오.”

 그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것도!”

 그가 내민 건 상아로 된 호신불이었다. 백부께서 편지 서두에 쓴 것처럼 ‘저승에 갈 때 무덤에 넣어달라 할 참’이라 했던 바로 그 호신불이었다. 무덤 속에 있어야 할 작은 불상이 왜 여기 있는 걸까.

김종록
일러스트=이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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