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 좀 된다고 月貰 올리면 탄탄한 商街도 3개월내 망해

중앙일보

입력

동대문 시장의 스타 유종환 밀리오레 사장(45)이 동대문을 떠난다. 지난 9월1일 밀리오레 3호점인 부산점을 내면서 전국적인 체인망 구축에 박차를 가했던 유사장이 갑자기 자신의 분신과도 같던 동대문 밀리오레를 떠나겠다고 지난 14일 발표해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유사장이 동대문 밀리오레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1998년 8월 동대문에 밀리오레를 오픈시킬 당시에 분양받은 상가구분 소유자들과, 개점 후 2년간 상가운영을 맡아 왔던 유사장간의 상가운영에 관한 시각차때문.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임대보증금에 대한 양측의 현격한 시각차이다. 일부 구분소유자들은 그간 점포의 ‘시장가격’에 맞게 임대보증금과 월세를 많이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해 왔다. 반면 유사장은 앞으로 점포가 발전하려면 임대보증금과 월세를 전략적으로 적게 받아야만 한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

유사장의 월세 저가전략은 독특하다. 예컨대 젊은 20대 벤처상인을 많이 유치, 밀리오레 같은 패션몰을 계속 번영시키려면 상가 임대보증금을 아예 1천만∼1천5백만원선에서 묶어 버려야 한다는 것. 신설 상가든 혹은 장사가 잘 되는 A급 상가든 상관없이 이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게, 시장바닥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그의 체험론적 지론이다.

불씨가 튀고 있는 동대문 밀리오레의 현재 임대보증금 현황을 들여다보자.

“장사가 잘 돼 점포 매매가가 그간 크게 올랐습니다. 동대문 밀리오레 4층 점포 3.6평(공용면적 포함)의 경우 구분소유자들이 살 때 낸 돈은 5천5백만원선이었지만 현시세는 3억원이 넘습니다.

이 때문인지 보증금과 월세도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처음 문을 열 땐 밀리오레 상인(세입자)들은 보통 보증금 5백만∼1천만원에 월세 50만원 정도 내고 장사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일부 구분소유자들이 보증금을 1천만원에서 3천만원으로 올리고 따로 ‘사이드 머니’로 3천만원을 또 세입자로부터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디다. 여기에 일부 구분소유자들은 월세를 3백만원선까지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상가 상인 k씨)” 하긴 구분소유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3억원을 호가하는 점포에서 상인들이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50만원만을 달랑 내고 장사를 하는 건 시장가격에 어긋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사장은 상인들의 주장에 한 마디로 반박한다.

“패션업계에서 40대면 환갑입니다. 그런데 이런 40대들이 어떻게 10대들의 힙합바지를 이해하겠습니까. 젊고 창의성이 풍부한 20대 벤처상인들이 매년 계속 물밀듯이 들어와야만 패션몰이 산다는 얘깁니다. 그러려면 천상 보증금을 낮추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졸 창업자 20대에겐 1천만원도 많은 거 아닙니까. 상가보증금이 억대를 호가하면 창의력이 풍부한 벤처상인들이 들어오질 않아요.” 우리 나라의 기존 재래시장이 백화점이나 신설상가에 번번이 깨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는 설명. 처음엔 좋은 상인들을 유치하려고 보증금과 월세를 싸게 하다 장사가 좀 잘 된다 싶으면 보증금과 월세를 엄청나게 올린다는 것. 자연 마진폭과 상품값이 올라가 비싼 상가로 낙인찍혀 점차 망하는 절차를 밟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탄탄한 상가라도 품질이나 서비스가 나쁘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3개월 안에 망합니다. 소비자들의 눈은 그만큼 무섭습니다.”

그는 동대문 밀리오레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밀리오레 명동점과 부산점은 동대문과 달리 임대분양을 했고, 내년에 문을 열 대구점, 수원점, 광주점도 임대분양에 들어갔다. 그의 성공은 계속 이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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