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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30) 은행 구조조정 <3> 충청은행을 맡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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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998년 6월 22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국제금융공사(IFC)의 제말 우 딘 카슘 부총재(왼쪽)와 김승유 하나은행장이 투자협정을 체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IFC로부터 1억5200만 달러를 유치해 보람은행과 합병을 추진한다. [중앙포토]

1998년 6월 27일, 신라호텔 중국집 팔선. 김진만 한미은행장과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부른 이유를 모를 리 없다. “퇴출 은행을 맡아 달라”는 얘기를 꺼낼 거란 걸 말이다. 아마 머릿속으로 할 말을 되뇌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마음이 급했다. 정부가 정한 은행 퇴출 D데이는 7월 2일. 닷새 뒤 퇴출은행 다섯 개를 영업정지하고, 건전한 은행들에 합병시키게 돼 있었다.

 “오늘 모신 이유를 대강 짐작하고 있으실 겁니다. 두 분께서 퇴출 은행을 하나씩 받아주십시오.”

 이미 머릿속엔 대강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하나에 충청은행을, 한미에 경기은행을 넘긴다’. 김승유가 먼저 말을 받았다. 마음을 굳게 정하고 온 모양이었다.

 “저희는 어렵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보람은행과 합병하기로 해서…. 국제금융공사(IFC)와 출자 논의를 끝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저는 하나가 충청을 맡아주었으면 했는데…. 알겠습니다.”

 내가 순순히 알겠다고 하자 김승유는 금세 표정이 편안해졌다. 이튿날 그는 이 순간을 떠올리며 속이 쓰라렸을 것이다. “충청을 맡아 달라”는 말이 제안이 아니라 통보였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김진만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왔다.

 “좋습니다. 대신 지역적 문제를 고려해 주십시오. 서울 근교 은행을 주셨으면 합니다.”

 경기은행을 달라는 말이다. 생각했던 바다. 한미는 경기와 짝짓는 게 맞다고 봤다. 퇴출 은행 중 지역에 기반을 둔 대동·동남은행은 지방 점포를 많이 가진 은행에 넘겨야 했다. 국민·주택은행이 적당하다. 그리고 신한과 동화은행은 공교롭게 점포 위치가 비슷했다. 두 은행을 짝짓고 중복되는 점포를 정리하면 될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두 분 말씀을 다 알아들었습니다.”

 그러고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의식적으로 계속 술을 돌렸다. 술이 도니 분위기는 좀 가벼워졌다. 술 잘 마시기로 유명한 김진만은 걸어갔지만, 김승유는 휘청거려 기사의 부축을 받을 정도였다.

 집에 들어왔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7월 2일까지 괜찮을까…’. 며칠 전부터 나를 괴롭히던 생각이다. 은행 퇴출 시나리오는 이미 공개된 터였다. 퇴출될 가능성이 큰 은행에선 이미 뱅크런(예금인출사태)이 시작되고 있었다. 더 걱정되는 건 노조였다. 술을 마시는 중에도 금감위 직원들의 보고가 계속 들어왔다. ‘눈치를 챈 몇몇 은행 노조가 본점을 점거하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더 끌어서는 안 되겠다’.

 28일. 새벽같이 이규성 재경부 장관과 강봉균 경제수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되겠습니다. 퇴출 작업을 내일 단행해야겠습니다.” 이튿날인 29일은 월요일이었다. 월말이라 은행 업무가 몰릴 때라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더 기다렸다간 뱅크런과 노조 압박도 점점 심해질 게 뻔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오늘 중으로 관계장관 회의를 소집해 주시고 대통령 보고 일정을 잡아주십시오.”

 급히 김승유 행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골프를 치던 중이었다. 합병을 앞둔 보람은행의 구자정 행장과 함께였다.

 “아무래도 충청은행을 인수해 주셔야겠습니다.”

 김승유는 펄쩍 뛰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어제 다 설명드렸잖습니까. 충청은행 지점이 110개입니다. 우리보다 훨씬 덩치 큰 은행을 어떻게 인수합니까.”

 “이걸 안 하시면 나머지 합병이고 뭐고 다 물건너갑니다.”

 “… IFC도 문제입니다. 벌써 출자 논의를 다 했단 말입니다.”

 “제가 벌써 양해를 받았습니다.”

 “… 저희는 인수할 인력도 없습니다.”

 “외환은행에서 인수에 대비해 교육한 인력이 있습니다.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김승유는 무거운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 알겠습니다. 충청을 맡겠습니다.”

 관계장관 회의에선 격론 끝에 29일 퇴출을 단행하자는 의견이 통과됐다. 대통령 보고를 위해 삼청동 안가로 달려가니 오후 3시반이었다.

 “시간을 더 끌 수가 없습니다. 내일 퇴출을 단행하겠습니다.”

 DJ는 딱 한마디만 했다.

 “혼란이 없도록 철저히 준비하세요.”

 “네, 준비는 이미 끝났습니다.”

 준비는 끝난 줄 알았다. 그 시각, 금감위에선 5개 은행 인수팀이 모여 도상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은행 짝짓기를 대비해 오래 전부터 교육을 받아 온 인력이다. 이들은 29일 새벽 각각의 퇴출 은행에 투입됐다. 어떤 혼란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등장인물

▶김승유(69) 하나금융지주 회장

1965년 한일은행 입행. 98년, 나는 하나은행장이던 그에게 충청은행 인수를 주문했다. 그는 이듬해 보람은행, 2002년 서울은행 합병을 통해 하나은행을 국내 3위(당시 자산 기준)로 끌어올렸다. 2005년 하나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했다.

▶구자정(72)

1964년 럭키(현 LG그룹)에 입사해 훗날 보람은행이 되는 금성투자금융 부사장을 지냈다. 98년 보람은행장을 맡아 하나은행과 합병했다. 하나증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충청 인수 후 예금 몰려
보람 합병 때 큰 도움

김승유 당시 하나은행장

1998년 6월,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의 갑작스러운 권유로 충청은행을 인수했던 김승유(69) 하나금융지주 회장. 지난달 31일 서울 을지로 본사에서 만난 그는 “지금 생각하면 그때 인수를 권유한 이 전 부총리가 고맙다”고 말했다.

 - 처음엔 인수 제안을 거부했다던데.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충청은행은 지점 수나 직원이 하나은행보다 많았다. 우리는 생긴 지 7년밖에 안 된 은행이었다. 인수하라고 보낼 인력도 없었다. 보람은행과의 합병을 앞두고 있기도 했다.”

 - 막상 인수하고 보니 어떻던가.

 “지금 생각하면 이 전 부총리에게 고맙다. 충청은행을 인수하면서 하나은행이 ‘정부가 공인한 우량 은행’으로 인식됐다. 예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어정쩡한 은행은 언제 퇴출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인수 은행에 돈이 몰린 거다. 이때 쌓은 규모나 인식이 지금의 하나은행이 있게 한 발판이 됐다.”

 - 합병 뒤 융화가 쉽지 않았을 텐데.

 “충청은행 퇴출로 직원뿐 아니라 충남 도민 전체가 박탈감을 느꼈다. DJP 연합 정부가 충남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이헌재 금감위원장에게 부탁해 은행 이름을 ‘충청하나은행’으로 달았다. 그리고 직원들을 일일이 만났다. 조를 짜서 2박3일씩 연수원에 불러서 같이 소주를 마셨다.”

 - 이후 보람·서울은행도 잇따라 합병했는데.

 “충청에서 쌓은 경험이 도움이 됐다. 보람 합병 때도 직원들 기 살리려고 애썼다. 광고 문구도 ‘하나가 되었습니다. 보람이 커졌습니다’로 정했다. 서울은행은 규모가 우리보다 너무 커 융화가 쉽지만은 않았다.”

 - 최근 외환은행까지 인수했는데.

 “돌아보면 외환위기 이후로 은행이 몰라보게 커졌다. 내가 했다기보다 직원의 열망이 컸다. 위기를 겪으며 ‘살아남아야겠다’는 자극을 많이 받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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