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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00의 법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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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무춘
연세대 환경공학부 교수

미국의 유명한 물류회사 페덱스(Fedex)에는 1:10:100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개발단계에서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면 1의 비용밖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생산단계로 넘어간 뒤 뒤늦게 고치려면 10의 비용이 필요하고, 불량품이 팔려나가 고객에게 항의가 들어오면 100의 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사업도 마찬가지다. 뼈대가 수립되는 계획단계에서 환경문제를 고려하는 것이 나중에 시행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와 씨름하는 것보다 100배는 더 효율적이다.

 우리 사회 환경갈등의 대표적 사례였던 새만금과 천성산 고속철도 사업을 보자. 그동안 환경영향평가 제도가 꾸준히 발전했음에도 이런 문제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개발사업 확정 뒤에야 뒤늦게 환경영향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환경영향평가는 적용 시점상 사전예방 효과가 충분하지 못하고, 여러 사업에 의해 포괄적으로 누적되는 영향을 충분히 평가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개발사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은 정부가 계획을 수립할 때 이미 확정된다. 따라서 환경파괴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려면 계획단계부터 전략적으로 문제점들을 찾아 접근해야 한다.

 우리 환경정책기본법에도 환경오염의 원천적 감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전예방 원칙이 명시돼 있다. 정부가 ‘전략환경영향평가’ 제도를 7월부터 시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발사업의 환경훼손을 줄이기 위해 1993년에 도입한 사전환경성검토 제도를 약 20년 만에 대폭 손질한 것이다.

 새롭게 도입되는 전략환경영향평가는 지난 30년간 운영해 온 환경영향평가와 명칭은 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로 차별화된 제도다. ‘전략(strategy)’이라는 단어에는 최초 계획단계에서부터 전략적으로 환경문제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즉 개발계획 확정 이전에 환경성평가를 통해 문제점을 발견하고 보다 친환경적인 개발 가능성을 찾겠다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개발 중 발생할 수 있는 환경문제와 사회적 비용을 계획단계부터 원천적으로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오래전부터 주목하고 있다. 유럽연합(EU) 27개국이 이미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시행 중이고, 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의 전략환경영향평가 의정서(SEA Protocol)에는 35개국이 서명했다. 중국·베트남 등 개도국에서도 기존 환경영향평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도입하고 있다.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첫째, 개발집단과 환경보전집단 양자 사이에 소통 기회를 제공해 서로 협력하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둘째, 공공참여 기회와 정보 투명성을 확보해 개발사업에 대한 신뢰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셋째, 환경문제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중단돼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국가예산이 낭비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개발과 환경보전이라는 양대 축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책계획에서 계획의 기조를 친환경적으로 바꾸고, 개발기본계획에서 개발 수단의 친환경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사전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먼저, 개발부처와 환경부 사이의 원활한 소통이 필요하다. 전략환경영향평가는 양자 간 소통이 잘되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또한 전략환경영향평가의 취지를 살리려면 여러 개발계획을 보다 폭넓게 평가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계획수립 시 마련된 대안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지금보다 한층 발전한 환경평가제도가 탄생할 것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를 더 이상 범하지 않으려면 전략환경영향평가 제도가 확고하게 정착돼야 한다.

이무춘 연세대 환경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