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외면, 싹도 못 트고 시드는 청년 창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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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대건(28)씨는 지금 창업의 꿈을 접고 취직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신용보증기금 주최 ‘대학생 우수창업아이템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탔는데도 말이다. 이유는 투자를 받지 못해서다. 수상한 아이템은 조명 겸용 자전거 도난 방지장치. 투자자들은 하나같이 “아이디어가 좋다”면서도 “생산을 하면 팔아 줄테니 가져오라”고 했다. 위험 부담은 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씨는 결국 월급쟁이가 되기로 했다.

 2009년 같은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탄 장효성(28)씨. 그의 사업 아이디어는 USB메모리를 잃어버린 이들에게 속에 담긴 파일을 되찾아주는 것이다.

USB를 주운 사람이 컴퓨터에 이를 꽂으면 파일이 인터넷을 타고 주인을 찾아가도록 소프트웨어를 심어놓는 방법이다.

장씨는 상을 받고서 여러 벤처캐피털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안착된 벤처에만 투자한다”는 소리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 역시 기업가의 길을 포기하고 이듬해 중소업체에 입사했다.

 아이디어와 사업성을 인정받은 청년 창업자들마저 투자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본지가 2009~2011년 3년간 전국 규모 대학생 창업경진대회에서 수상한 20개 팀의 근황을 파악한 결과 투자를 받은 곳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나마 친인척이 투자했다. 나머지는 대체로 가족·친지에게 돈을 빌리는 방법 등으로 근근이 자금을 마련했다. 투자 유치를 포기하고 취업을 한 수상 팀도 5곳에 달했다.

 청년 창업자들이 자금난에 쩔쩔매는 이유는 창업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에인절 투자자’가 절대 부족해서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2010년 국내 에인절 투자 규모는 326억원. 한 해 20조원 가까이 투자가 이뤄지는 미국의 600분의 1도 안 된다. 2000년대 초에는 한때 규모가 5000억원을 넘었으나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사라졌다.

요즘 청년 창업자들이 “한국은 천사(에인절)가 없는 나라”라고 푸념하는 이유다.

 국내에 ‘프라이머’나 ‘소프트뱅크 벤처스 코리아’ 같은 에인절 투자 전문회사가 몇몇 있지만 아직 규모가 미미하다. 벤처캐피털마저 에인절 투자를 꺼린다. 실패 위험이 큰 창업 기업은 외면하고 설립된 지 3~5년이 지나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벤처에만 투자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청년 취업난을 해소하겠다며 창업을 장려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청년 창업자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젊은이들을 오아시스(에인절 투자자) 없는 사막(창업)에 몰아넣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중앙대 박재환(산업창업경영대학원 창업사업단장) 교수는 “한국은 실패한 기업가를 용납하지 않는 나라”라며 “정부가 획기적인 에인절 투자 확장책을 내놓지 않으면 2~3년 뒤 창업에 실패한 수많은 젊은이가 창업 재도전은커녕 취업조차 하지 못하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장정훈·채승기·김경희·노진호·이가혁·하선영 기자

◆에인절(Angel) 투자=창업 초기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 투자와 구별된다. 자금을 대주고 주식 지분을 받는다. 투자한 기업이 상장하거나 다른 기업에 비싼 값에 인수합병(M&A) 되면 에인절 투자자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투자 기업이 실패해 손실을 볼 공산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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