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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위기 누가 풀까 정치인, 학자보다 저커버그에게 걸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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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고향 마을은 광주 이씨 집성촌이었다. 밥도 방도 일손도, 화장실마저 무람없이 나눠 쓰며 살았다. 그에 비하면 지금 우리 집과 아파트 복도 건너편 집 사이엔 만리장성이 가로막힌 셈이다. 한데 양석원(34)씨를 보면 옛날 그 삶의 방식이 가장 혁신적 형태로 귀환해 심지어 21세기의 대세가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는 ‘이장(@ejang)’이란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온라인에서 오래 써 온 호칭인데, 지금 하는 일과 기막히게 어울린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빌려 쓰고 나눠 쓰는 작은 ‘마을’ 하나를 일궜다. 이름하여 협업공간 ‘코업(Co-Up)’이다. 하루 1만원, 혹은 한 달 24만원에 업무공간을 빌려준다. 젊은이들이 모여 꿈과 아이디어를 나눈다. ‘코업은 대학’이란 이름으로 지식공유 세미나도 연다. 투자자와 창업자, 젊은 인재들이 모여드는 사랑방이 됐다. 이장은 “그 과정에서 쌓이는 사회적 자본이 엄청나다”고 했다. 나눌수록 커지는 것. 그가 꿈꾸는 공유경제(Sharing Economy)의 핵심이다.

 3년 전 그는 잘 다니던 대기업을 관두고 무작정 미국 실리콘밸리로 갔다. 거기서 지금 미국의 가장 ‘힙(hip)’한 트렌드라는 공유 비즈니스에 눈떴다. 힙이란 세련되고 앞서간다는 뜻의 은어다. 그러니까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메카 미국에서 그 정반대 개념이 들불처럼 세를 얻고 있는 것이다.

 지역 기반 차량 공유 서비스인 ‘집카(ZipCar)’를 보자. 서비스 가입자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주변 등록차를 찾아 싼값에 빌려 탄다. 차주들은 그저 세워두는 게 일이던 차를 굴려 돈을 번다. 빌려주는 사람, 타는 사람 모두 당당하다. 불황기에 딱 맞는 사업일 뿐 아니라 자원낭비·환경오염을 막는 사회운동적 성격까지 지녔다. 우리나라에서도 집·차부터 책·아이 옷까지 공유하는 사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부분 코업에서 틀을 다졌다.

 이 서비스들의 근저엔 예외 없이 사라져가던 공동체적 가치가 숨어 있다. 물건을 주고받으려면 아무래도 가까이 살아야 한다. 멀리 미국·유럽의 빈집을 빌린다 해도 개념은 어디까지나 ‘이웃’이다. 서비스 사용자들은 본 적도 없는 거래 상대의 신뢰도를 가늠하기 위해 페이스북 같은 SNS 평판을 따진다. 내 친구의 친구라면 일단 안심이다. 놀랄 만큼 고전적인 방식이다.

 29일 막 내린 올 다보스 포럼 주제는 자본주의 위기였다. 이 난해하고도 절박한 문제의 해법을, 난 정치가나 금융공학자들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외려 이장과 그 친구들, 혹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처럼 디지털 유목민의 감성으로 충만한 젊은 테크놀로그들에게 기대고 싶다. 전 지구와 내가 사는 마을을 수평으로 사고할 줄 아는, 나의 삶과 저 멀리 아프리카 소년의 삶이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

이나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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