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이 더 오래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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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술 발전으로 인간의 평균 수명은 크게 늘고 있지만 사회계층간 수명 격차도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보고서가 발표돼 프랑스 사회가 떠들썩하다. 더구나 유럽연합(EU) 14개 국가들 가운데 프랑스가 계층간 수명 격차가 가장 크다는 것이다.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INSERM)는 지난 12일 1962년부터 96년까지 34년간 질병과 사고 등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계층별 통계를 분석, '건강의 사회적 불평등' 이란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35세인 프랑스 남성 노동자는 그동안 통계를 근거로 계산할 경우 앞으로 약 38년을 더 살 수 있다.

이는 나이와 성별이 똑같은 전문직 종사자나 간부급 근로자에 비해 6년6개월이나 먼저 죽는다는 뜻이다. 또 이 노동자는 35~65세 사이에 사망할 확률이 26%로 전문직이나 간부직에 비해 두배나 높다.

계층간 수명 격차는 전문성 여부에 따라 더욱 벌어진다. 미숙련 노동자는 전문직 종사자에 비해 45~59세 사이에 사망할 확률이 세배나 높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계층간 수명 차이가 근로자 당사자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출산 전후 영아 사망률도 간부급 근로자 자녀들은 천명당 7.1명에 그친 반면 일반 노동자 자녀들은 천명당 10.2명이나 됐다. 미숙아 출산율도 노동자 계층의 경우가 간부.전문직에 비해 1.5~2배 가량 높았다.

다른 질병도 비슷하지만 특히 순환계 이상으로 인한 사망률(35~54세)은 70년에서 90년 사이 20년간 간부급.전문직에선 변화가 없었지만 육체 노동자와 단순 사무직 노동자들에게는 두배 이상 늘어났다.

즉 의학기술 발전이나 의료보험제도 확산에도 불구하고 일반 노동자들의 건강상황은 별로 나아지는 게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프랑스는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건강 불평등이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45~59세 사이의 육체 노동자와 정신 노동자 사망률 격차는 다른 유럽국가들이 33~53%였으나 프랑스는 71%나 된다.

루시앙 아방아임 국립보건의학연구소 소장은 "질병 앞에서의 인간평등은 의학적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정치적 해결이 필요하다" 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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