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전역 유가인상 항의시위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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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가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유류세 인하를 요구하는 운송업계의 시위가 유럽 전역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각국 정부가 유류세 인하 불허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데다 일부 국가에서는 이 문제가 정치쟁점화되고 있어 이번 사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3일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당국이 탱크로리를 비상 동원, 유류공급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우려했던 석유대란이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

현재 9천여 주유소가 재고 소진으로 영업을 중단한 데 이어 대중교통 수단의 운행에도 일부 차질이 빚어지고 있으며 가장 심한 타격을 받고 있는 웨일스 지역에서는 일부 학교가 휴교에 들어갔다.

여기에 국립보건기구(NHS)가 이날부터 응급치료를 제외한 나머지 수술계획을 취소하는 등의 비상조치에 들어가자 불안을 느낀 소비자들이 생필품 사재기에 나서는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다.

산업계에서도 하루 5천만파운드(1천억원) 정도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국은 12일 밤부터 약 500대의 유조차를 동원, 비상 급유에 나서고 있으나 일반 소비자들에 대한 유류공급 정상화까지는 상당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토니 블레어 총리는 이날 시위대가 인명을 담보로 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유류세 인하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블레어 총리는 시위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시위대가 실제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독일과 벨기에 정부도 시위대에 대한 강경대처를 천명했
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시위대가 운집한 북부 슈베른시를 방문한 자리에서 유류가격 인하요구 시위는 경제에 상처를 입힐 뿐이라면서 경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게임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기 베르호프슈타트 벨기에 총리도 영국 등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세율인하를 통한 가격 인하는 "올바른 해결 방안이 아니다"고 말해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할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독일 화물운송조합(BGL)은 유가에 포함된 환경세의 폐지 등을 요구하면서 이날부터 항의 표시로 고속도로(아우토반) 저속 운행에 들어갔으며 오는 26일에는 대규모 차량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독일 농민연합(DBV)도 이번주부터 항의시위를 전개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야당인 기민당(CDU)이 시위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환경세 폐지운동 동참을 발표, 환경세 문제가 여야간 정치쟁점화되고 있다.

벨기에에서도 유가 인하를 요구하는 트럭 시위가 4일째 계속돼 주요 간선도로의 교통이 마비되고 안트베르펜항의 항만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벨기에 도로운송조합(UPTR) 소속 노조원들은 대형 트럭을 동원, 행정기관이 밀집된 브뤼셀 도심 관통도로와 고가차도, 터널 입구 등을 계속 차단하고 있으며 남부의 샤를루아와 투르네, 동부의 리에주, 북부의 주요 항구도시인 안트베르펜 항만에서도 교통방해 시위를 확대하고 있다.

이밖에 이탈리아에서는 정유소 2곳의 출입이 시위대에 의해 봉쇄된 상태이며 네덜란드에서도 산발적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아일랜드와 폴란드에서는 운송단체와 농어민 단체가 유가인하를 요구하며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런던.브뤼셀.베를린=연합뉴스) 김창회.이종원.송병승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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