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210만원 대기업을…아들 취업 말린 아버지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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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대학에 다니는 김준수(22·가명·광주광역시)씨는 지난해 2월 대학 산학협력단 소속 근로자로 기아자동차에서 석 달 일하다 그만뒀다. 아버지(53·시각장애 3급)가 “다니지 말라”고 강요해서다. 아버지는 아들 월급(210만원) 때문에 기초수급자(기준소득 117만원)에서 탈락할 것을 걱정했다. 아버지는 “너 때문에 의료비를 한 푼도 지원받지 못하게 됐다. 포기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매달 96만원의 생계지원금을 받는다. 월 5만원을 내고 임대아파트에 산다. 의료비는 거의 무료이고 휴대전화료 50% 할인 등 52가지 혜택을 본다. 그는 아들 월급보다 이 혜택이 낫다고 판단했다. 구청 담당자가 김씨 아버지에게 “좋은 직장인데 계속 다니게 하는 게 어떠냐”고 설득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김씨에게도 “좋은 직장인데 아쉽지 않으냐”고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지난 8일 희귀질환인 모야모야병을 앓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구모 씨가 서울 강서구 집에서 휴대용 가 스레인지로 밥을 짓고 있다. 반찬은 김치와 깻잎이 전부다. 보일러를 틀지 않아 방은 냉골이다. [안성식 기자]

  기초수급자는 전국 88만 가구 147만 명이다. 이 중 김씨네처럼 23만4000가구는 수급자가 된 지 10년이 넘었다. 상당수는 수급자 혜택(가구당 월평균 79만원)에만 기대 ‘탈(脫)빈곤’ 노력을 포기한다. 수급자에서 벗어나면 52가지 혜택이 거의 사라지기 때문이다. ‘전부(All) 아니면 전무(Nothing)’ 방식의 복지제도가 근로 의욕을 꺾는 모순의 단면이다. 광주광역시 서구청 박용금 사회복지사는 “수급자에서 벗어나면 쓰레기봉투 지원 같은 것마저 끊긴다. 100만원 벌어 수급자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덜 버는 게 유리한데 누가 일을 열심히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가 지난해 12월부터 임시·일용직 기초수급자의 소득(2011년 1~6월)을 처음으로 대조하면서 근로 포기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미신고 소득이 드러난 10만 명 중 상당수는 수급자에서 탈락하거나 정부 지원금이 줄게 됐다. 일할수록 주머니가 두터워지게 인센티브 제도를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소득자료를 들이대다 보니 “차라리 일을 하지 않겠다”고 반발하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용하 원장은 “수급자가 번 돈을 소득에서 빼 주는 공제제도를 확대하고 수급자에서 벗어난 뒤 일정 기간 의료비·교육비를 계속 지원해 자립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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