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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스타 과학자’ 황우석을 둘러싼 4가지 의혹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월간중앙

“개의 난자에 코요테 체세포를 주입하고 복제 배아를 만들어서 개의 자궁에 이식해…….”
그가 새끼 코요테를 안고 돌아왔다. 2005년 말 줄기세포 논문 조작사건의 주인공 황우석(58) 박사 말이다. 그는 2011년 10월 17일 5년여 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함께 활짝 웃는 얼굴로 코요테 복제 성공을 발표하는 모습에서는 한때 승승장구하던 시절의 표정도 엿보였다. 그로부터 한달 전인 9월 말에는 한 신문사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복귀를 알렸고, 며칠 뒤에는 2004년 자신이 만든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로 캐나다에서 특허를 획득했다고 밝혔었다. 그가 코요테 복제 소식까지 발표하자 언론들도 황 박사의 재기를 알렸다.

그에게 다른 좋은 소식도 있었다. 11월 3일 서울고등법원 행정 7부는 논문 조작사건으로 황 박사에 내려진 파면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2010년 7월 파면 처분이 정당하다고 했던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논문 조작사건이 벌어진 뒤 서울대 징계위원회는 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보고서를 바탕으로 황 박사의 징계를 의결하고 그에게 파면 처분을 내렸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서울대가 사회적 파급 효과를 고려해 조작 경위나 증거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논문 조작을 이유로 파면 징계를 내린 것은 재량권 일탈로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언뜻 봐선 황 박사가 논문 조작사건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이 재판은 당시 사건의 책임을 다루는 형사소송과는 별도로 진행 중인 행정소송이다. 파면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했을 뿐 논문 조작 관련 혐의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재판이 아니라는 얘기다. 황 박사는 2006년 줄기세포 관련 논문을 발표한 뒤 기업의 후원금과 연구비를 빼돌린 혐의, 생명윤리법을 위반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기업 후원금의 경우 논문 조작과 지원 사이의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정부지원 연구비 횡령과 생명윤리법 위반만을 유죄로 인정했다.

2010년 12월에 열린 2심에서 재판부는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횡령액 가운데 1억여 원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으로 선고형량을 줄여주었다. 현재 그는 대법원에 상고 중이다.

학계 “논문으로 말하라”
앞뒤 안 맞고 허술한 코요테 복제 발표

그렇다면 최근 들어 황 박사가 발 빠르게 움직이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줄기세포 연구를 승인받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그는 반쪽짜리 과학자 신세를 면키 어렵다. 그럴 경우 국가 예산지원이나 대규모 투자를 받기도 힘들다. 거기다 대법원까지 그의 유죄를 확정한다면 운신 폭은 더욱 좁아질 것이다. 그로서는 마음이 조급해질 수 밖에 없다. 대법원의 판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도 배제하기 어렵다.

6년 전 불명예스럽게 떠났지만 그는 아직도 ‘뜨거운 감자’다. 그래서 이번 공식적인 복귀 움직임을 두고도 말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이런 질문이 앞선다. 그의 연구는 아직도 유효한가? 그는 수많은 불치병 환자에게 여전히 희망의 불씨일까?

황 박사가 멸종위기 종인 코요테를 세계 최초로 복제했다고 발표하자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하지만 학계의 반응은 냉랭했다. 논문 한 장 없는 복제 발표에 “언론 플레이일 뿐”이라는 지적이 대부분이었다. 의혹도 제기됐다. 황 박사와 경기도는 이종(異種)간 복제가 세계 최초라고 발표했는데 2007년 서울대 이병천 교수팀이 개의 난자를 이용해 회색 늑대를 복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황 박사가 몸담은 수암생명과학연구원(이하 수암연구원) 측은 “개와 회색 늑대는 같은 종”이라며 “이종간 복제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주장했다.

학자들 사이에 토론할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늑대 복제가 아니라도 이미 양과 산양 사이의 이종간 복제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그러므로 이번 성과를 정확히 발표하려면 ‘개과(科) 동물 중에 최초의 이종간 복제’라고 말했어야 옳았다. 황 박사는 “개의 독특한 생리 특성상 양보다 복제가 어렵다”고 말했지만 전문가들은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붙일 만큼 기술적으로 엄청난 진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코요테가 멸종위기라는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정한 멸종위기등급은 아예 멸종한 동물을 제외하고 7단계다. 특정한 장소에서 따로 보호하지만 서식지가 사라진 EW(Extinct in the Wild)가 가장 멸종 위험이 높고 LC(Least Concern)가 가장 낮다. 코요테는 이 분류 중 가장 낮은 LC 등급이다. 별다른 위험에 처해있지 않다는 의미다. 심지어 사람도 이 등급에 속하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자 수암연구원 측은 다소 와전된 측면이 있다고 한 발 물러섰지만 연구 결과를 과대 포장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황 박사는 한 발 더 나아가 “이종간 복제보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이속(異屬)간 복제를 시도하겠다”며 “이와 함께 멸종한 매머드 복제에도 도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에 김문수 지사는 “매머드에 이어 공룡까지 복제하면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쥐라기 공원’으로 전 세계를 크게 한 번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황 박사의 주장은 시베리아 빙하에 남아 있는 매머드의 체세포를 이식한 뒤 이속간인 코끼리를 이용해 복제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황 박사 팀이 우수한 복제기술을 가졌고 매머드가 현세 동물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아예 없지 않지만 매머드의 체세포가 제대로 보관돼 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은 만큼 성공가능성을 점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지난달 러시아와 일본 공동연구팀이 매머드 복제에 나서겠다고 발표하자 복제 양 ‘돌리’로 잘 알려진 영국 로슬린연구소가 “동물의 사체에서 뽑아낸 세포가 복제에 이용할 만큼 온전할 지 의문이며 성공가능성은 1~5%”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학술지 ‘엠바고’라면서 언론에 발표?
두 달여가 지난 지금까지 황 박사의 복제 성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논문 발표 소식은 없었다. 당시 그는 “현재 관련 연구 성과를 세계적인 학술지가 심사 중이지만 엠바고가 걸려 있어 학술지 이름을 공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북대 수의학과 여상건 교수는 “학술지에 따라 논문의 검증기간은 다르고 까다로운 검증절차를 거치다 보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논문 게재에도 엠바고가 걸린다는 얘기는 언론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시적으로 보도를 유예한다’는 엠바고의 의미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라면 언론 발표도 논문 게재 시점 이후로 미뤄야 하는 게 상식이다.

황 박사의 측근인 현상환 수암연구원 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관련 논문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무려 1년 가까이 엠바고가 걸려있다는 뜻이 된다.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허민 교수는
“복제 기술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보존하는 등 여러 좋은 일에 쓰이겠지만 과학자가 이런 식으로 연구 성과를 논문보다 먼저 홍보용으로 공개하는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해외 특허는 홍보용?
거절 가능성 높은 국내 특허는 자료제출도 안 해
2011년 9월 26일 캐나다 특허청은 황 박사가 서울대 재직 시절 만든 배아줄기세포(NT-1)의 물질특허와 방법특허를 인정했다. 그가 설립한 줄기세포 연구기업인 에이치바이온(H BION)이 특허 권리자로, 황 박사를 비롯한 15명의 연구자가 발명자로 등록됐다. 서울대가 가졌던 특허출원 권리는 2009년 1월 에이치바이온에 양도됐다. 이번 특허를 두고 황 박사 측은 NT-1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상희 대한변리사협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4년 줄기세포의 실체가 인정된 셈”이라며 “황우석 줄기세포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 말은 사실과 다르다.

특허청은 물질의 진위여부를 따지는 기관이 아니다. 물질이나 기술이 이전에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판별해 우선권을 부여할 뿐이다. 황 박사 측의 주장이 맞다면 NT-1은 세계 최초의 체세포복제 줄기세포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학계는 NT-1이 체세포 유래가 아닌 처녀생식의 산물이라고 보는 견해가 강하다. 양측 주장 중 어느 쪽이 맞는지 판단하는 일은 특허청 몫이 아니다. 캐나다 특허는 NT-1이 체세포 유래임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가 아니라는 뜻이다. 익명을 요구한 특허청 관계자는 “특허청은 실험을 하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그 물질의 진위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며 “합리적인 수준의 의심이 없다면 제출한 서류를 믿고 그 서류에 적힌 내용의 기술적 가치나 진보의 정도를 따질 뿐”이라고 말했다.

과연 ‘캐나다 정부가 2005년 사건을 알고도 특허를 내줬느냐’도 의문점이다. 2008년 9월 호주는 NT-1에 대한 특허 결정을 내렸다가 번복한 사실이 있었다. 당시 국내 언론에서는 황 박사가 개발한 NT-1이 호주에서 특허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고 호주 특허청도 이미 심사를 마쳤다. 같은 해 9월 23일 수암연구원 측도 특허등록을 통보 받았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다음날 호주 특허청은 심사 기준을 충족시켰지만 아직 승인되지 않았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결국은 등록이 보류됐다.

일각에서는 “호주 특허청이 번복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심사 과정에서 2005년 황 박사의 논문 조작사건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심사가 끝난 상황에서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뒤늦게 그 사건을 알게 됐고, 그에 따라 특허를 내주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판단을 했으리란 의미다. 당시 수암연구원 측은 “서울대 조사위가 호주 특허청에 이의를 제기해 특허등록이 번복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거꾸로 호주 특허청이 심사 당시에는 2005년 사건을 몰랐다는 사실의 반증일 수 있다. 주체가 서울대건 언론이건 결정을 번복할 만한 중대한 사실을 호주 특허청이 뒤늦게 알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뒤로 수암연구원 측은 전략을 바꾼 듯하다. 캐나다 특허 등록을 앞두고는 어떤 정보도 언론에 흘리지 않았다.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던 이전과는 달리 신중했다. 특허증을 교부받고 나서야 특허 소식을 알렸다. 캐나다 특허청 역시 호주와 마찬가지로 2005년 사건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까지 캐나다 특허청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특허청에 의견제출통지서 안 내고 버티기
캐나다 특허는 그렇다 쳐도 더 이해하기 힘든 일은 황 박사 측이 정작 국내 특허에는 손을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국내에서도 NT-1 관련 특허 2건을 출원했다.

<사이언스>에 게재된 2004년과 2005년 논문 두 건에 관한 특허다.

2004년 논문은 난자 제공자와 체세포핵 제공자가 동일한 경우고 2005년 논문은 난자 제공자와 체세포핵 제공자가 다른 경우다. 이 중 2005년 논문 관련 특허신청은 2011년 12월 2일 최종적으로 거절됐다. 보통 특허를 출원하면 특허청은 출원인에게 의견제출통지서를 내도록 하는데 황 박사 측이 수년째 이를 제출하지 않았고 대리인이 포기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라고 특허청은 설명했다.

2004년 논문 관련 특허는 법적으로 심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의견제출통지서를 내지 않고 계속 기간만 연장해왔다. 황 박사 측 특허 대리인인 김순웅 변리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미국·뉴질랜드·브라질·인도에서 심사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황 박사 측이 스스로 심사를 미루는 셈이다. 의견제출통지서 제출을 미룰 경우 특허청이 출원을 거절할 근거가 되지만 그러한 제도 개선이 최근에 이뤄져 규정을 소급해 적용하지는 못한다고 특허청 측은 설명했다. 때문에 출원인이 연장 신청을 계속해도 특허청이 제출을 강제할 방법은 없다.

과학적 근거와 확신이 있다면 의견제출통지서를 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아직도 이를 제출하지 않고 기간 연장만 계속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한 관계자는 “NT-1이 과연 체세포복제인지 처녀생식인지 정확히 결정되지 않았고 오히려 학계는 처녀생식이라고 주장한다는 사실을 우리 특허청이 모를 리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는 몰라도 국내에서 특허가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국내에서 최종적으로 거절 통보가 나올 경우 신뢰도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황 박사 측이 일부러 심사를 미룬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NT-1 재검증 논문 <네이처>서 문전박대
“정치적 이유로 탈락했다” 주장 사실과 달라
과학자라면 당연히 자신의 성과를 언론이나 특허가 아닌 논문을 통해 인정받아야 한다.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많은 사람이 “특허를 홍보하기 전에 논문을 통해 NT-1이 정말 체세포 유래 배아줄기세포임을 밝혀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황 박사도 이 점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2008년부터 명예회복에 시동을 걸었다. 바로 ‘NT-1 재검증 논문’이다.

벌써 7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니 당시 사건의 전개 과정을 잠시 복기해보자. 2004년 2월 황 박사를 중심으로 한 서울대 연구팀이 과학저널 <사이언스>를 통해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의 성공을 발표하자 보건복지부는 이듬해 1월 공식적으로 서울대 연구팀의 줄기세포 연구를 승인했다. 2005년 5월 서울대 연구팀은 난치병 치료의 새 길을 열어줄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사이언스>를 통해 발표했다. 승승장구하던 서울대 연구팀은 2005년 11월 방영된 MBC 보도 때문에 제동이 걸린다. 제작진은 황 박사가 매매된 난자를 연구에 사용했다고 보도한 데 이어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는 없다”는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 이사장의 폭로와 함께 공식적으로 줄기세포 진위를 검증하는 내용을 보도했다. 2006년 1월 서울대 조사위원회(조사위)는 황 박사가 2004년과 2005년 <사이언스>에 게재한 줄기세포 연구 논문이 조작됐고, 원천기술의 독창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에 <사이언스>는 두 논문의 게재를 취소했고 보건복지부는 줄기세포 연구 승인을 취소했다. 검찰이 황 박사를 생명윤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데 이어 그는 서울대 교수직에서도 파면됐다.

사건 이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황 박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이 있었다. 한국계 외국인 박모 박사다. 당시 뉴욕대 의대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박 박사는 황 박사에게 연락을 취해 조사위 발표의 비과학적 논리를 지적하고 반론의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황 박사와 이야기를 나눈 뒤 박 박사는 조사위 보고서와 서울대의 보충자료를 영문으로 번역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해 세계줄기세포학회에 보고했다.

이 자료를 검토한 세계줄기세포학회는 학회이사였던 이시카와 박사를 통해 국제적 공동 검증을 제안했고 황 박사도 이를 수락해 공동 검증이 추진됐다. 비록 난자 공여자의 체세포를 확보하지 못해 공동 검증은 무산됐지만 박 박사의 이러한 노력은 황 박사를 양심을 판 사기꾼으로 몰아가던 당시 여론의 흐름을 바꾸는 데 큰 몫을 했다. 그 후로도 박 박사는 NT-1의 가치를 여러 시민단체에 알리거나 다른 과학자와 공동으로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황 박사를 도우려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박 박사에 따르면 소송이 한창이던 2008년 10월 황 박사는 ‘난자 공여자의 체세포를 확보했으니 NT-1을 다시 한 번 검증해보고 싶다’며 박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당시 뉴욕에 머물던 박 박사는 “NT-1의 업적을 평가하는데 참여하는 것은 과학자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 뉴욕대 연구원을 사직하고 수암연구원으로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상환 원장은 “당시 오히려 박 박사가 (수암연구원으로) 스스로 오기를 희망했다”며 “논문 실적도 거의 없고 지도교수의 추천서도 없었지만 황 박사와의 인연 때문에 받아들였다”고 반박했다.

제 1저자, 논문거절 사실 1년 만에 알아
2009년 2월 2일 열린 황 박사의 32차 공판 상황을 살펴보면 현 원장의 주장은 신뢰가 없어 보인다. 당시 황 박사 측 변호사는 증인으로 출석한 박 박사에게 “황 박사가 NT-1 난자 공여자의 체세포를 확보했으니 처녀생식이든 체세포복제든 가능한 모든 검사를 해서 그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고 싶다며 꼭 도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한 사실이 있느냐?”고 물었고 박 박사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검찰도 아니고 황 박사 측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해준 셈이다.

어쨌든 수암연구원으로 온 박 박사는 황 박사의 측근인 충북대 정의배 교수, 현 원장 등과 NT-1이 체세포복제임을 입증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2009년 5월 그 결과를 정리한 논문을 과학저널 <네이처>에 투고했다. 논문의 제 1저자로 참여한 박 박사는 이후 황 박사나 교신저자인 정 교수로부터 논문 심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한다. 1년이 지난 2010년 5월 말 박 박사는 정 교수가 모 언론과 가진 인터뷰를 보고 2009년 7월 논문이 이미 거절(Reject)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정 교수는 관련 인터뷰에서 “90% 가까이 탈락하는 1차 심사를 통과하고, 2차 심사에선 ‘정치적인 이유로 최종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논문이 과학이 아닌 정치로 해석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교신저자인 정 교수가 제 1저자인 박 박사에게 1년 가까이 심사 결과를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이에 박 박사는 <네이처> 측에 직접 e-메일을 보내 제출된 논문과 거절 이유 등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며칠 후 <네이처> 선임편집인으로부터 답장을 받아 제출된 논문을 확인한 박 박사는 뒤늦게 자신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됐다고 한다.

“제가 논문의 제 1저자였는데 저 외에 저자를 한 명 추가한 데다 절대 논문에 넣을 수 없는 비과학적 주장들과 데이터가 제가 쓴 논문 위에 마음대로 편집돼 있었어요. 사전 조율 당시 빼기로 한 부분까지 다시 넣었고, 수정하기로 한 부분도 전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설명대로 <네이처>에 논문을 제출하기 직전인 2009년 5월 4일 박 박사는 논문의 흐름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달리 흘러가자 수정이 필요한 부분을 정리해 황 박사와 정 교수 등에게 e-메일을 보냈다. 그 메일에 따르면 박 박사는 문법상 논리가 맞지 않는 부분, 참고 논문과 유사성이 떨어지는 부분, 논거가 정확하지 않은 부분 등을 지적했다. 하지만 그의 의견은 황 박사 측이 <네이처>에 제출한 논문에 담기지 않았다. 논문에서 가장 중요한 제 1저자의 연구의도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런 주장에 현 원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박 박사는 외국인이라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될 때가 많았는데 연구 단계에서부터 여러 가지 오해가 있었다”며 “그가 연구한 부분이 논문 전체의 논리와 맞지 않아 수정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네이처] 편집인 “기술적 문제 심각해 게재 거절”
하지만 <네이처> 편집인의 답변 역시 박 박사의 주장에 힘을 보태준다. 프란체스카 체사리 <네이처> 선임편집인이 박 박사에게 보낸 e-메일을 살펴보면 “정치적인 이유로 거절됐다”는 정 교수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이 답변에서 체사리 편집인은 “제출한 실험 데이터가 논문이 주장하는 내용을 뒷받침하지 못해 심사위원들이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그런 기술적 문제가 심각해 게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The reviewers felt that the experimental data provided did not support the claims put forward in your manuscript, and they raised concerns about the strength of the novel conclusions presented. We felt that those technical concerns were serious enough to preclude publication in Nature)”고 지적했다.

오히려 세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은 “정치적인 관점과 별개로 이 줄기세포가 체세포 핵치환에서 유래했음을 증명하는 일 자체가 이 분야의 실질적인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다(Political aspects left aside, proving that this line was SCNT derived will not substantially advance the field)”며 이 심사가 2005년 사건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하지만 현 원장은 “보통 저널의 심사위원이 논문을 검토할 때 해당 논문에 있는 과학적 내용만 평가하는 게 보통”이라며 “<네이처> 심사위원들이 2005년 사건과 조사위의 발표 등을 거론하는 자체가 정치적인 판단이 개입돼 있음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은 또 있다. 이들은 박 박사 모르게 다시 한 번 같은 내용의 논문을 <자이고트>에 투고했다고 한다. 제 1저자의 허락도 없이 논문을 제출한 셈인데 박 박사는 논문에 사인조차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투고 사실을 알게 된 박 박사가 이 같은 내용을 <자이고트> 측에 알리자 브라이언 데일 편집인은 그에게 e-메일을 보내 “2010년 9월 논문을 접수해 게재를 결정하고 2011년 2월 인쇄에 들어갔지만 박 박사가 보낸 메일과 그 내용을 고려해 게재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We did receive your manuscript ‘Epigenetic signatures of somatic cell nuclear transfer-derived embryonic stem cells’ on the 2nd September 2010 and it was accepted and finally sent to print on the 6th February 2011. Considering your recent mail and the implications we will withdraw the mentioned paper)”고 밝혔다. 논문 투고에 동의한 적 없다는 제 1저자의 항의를 받아들여 게재를 취소했다는 뜻이다.

위증? 법정 증언과 판이한 정 교수 논문
전문가 “체세포복제 아닌 처녀생식임을 자인한 꼴”
두 차례에 걸쳐 논문 게재에 실패한 황 박사 측은 <네이처>에 첫 논문을 제출한지 2년 2개월이 지난 2011년 7월 라는 저널에 자신들의 논문을 게재하는 데 성공한다. 박 박사의 이름과 그가 실험한 데이터는 이 논문에서 빠졌다.

보통 저널의 수준은 인용지수 즉 얼마나 많은 다른 학자에게 인용되었느냐에 따라 평가한다. 물론 인용지수가 논문의 질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인용지수가 높다면 그만큼 과학적·기술적 활용가치가 높다는 의미다. 황 박사 측이 처음 논문을 게재하려 했던 <네이처>의 인용지수는 36.1이다. 논문 하나당 전 세계 36.1명의 학자가 인용했다는 뜻이다. 반면 <몰레큘러>의 인용지수는 불과 1.814다.

그렇다면 <몰레큘러>에 실린 논문의 수준은 어떨까? 황 교수 측은 이 논문에서 NT-1이 처녀생식임을 입증한 조사위의 발표나 하버드대 김기태 박사의 논문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논문을 검토한 다수의 전문가들은 NT-1을 체세포복제라고 판단할 만한 과학적 논거는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NT-1의 진실을 규명하는 열쇠는 유전자 각인 검사, 메틸레이션 분석, SNP 분석 등 크게 세 가지다.

2008년 12월 22일 열린 황 박사의 30차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정의배 교수는 변호사의 질문에 “NT-1을 검증하는 실험을 했더니 부계발현각인유전자(Paternally expressed imprinted genes)인 SNRPN이 발현됐다”고 응답했다. 처녀생식이라면 아버지 쪽에서 전해지는 부계유전자가 발현되지 않아야 하는데 NT-1에서는 SNRPN이 나왔으니 이는 처녀생식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그는 “부계유전자 중 SNRPN이 가장 안정적인 각인현상을 유지해 이를 제일 좋은 마커(기준)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교수 등이 <몰레큘러>에 낸 논문을 살펴보면 정작 가장 좋은 기준이라던 SNRPN은 발현되지 않았다.(However, Paternally expressed SNRPN mRNA was not expressed in either SCNT-hES-1 lines. 그림1) 반면 대표적인 모계발현각인유전자(Maternally expressed imprinted genes)인 H19는 체세포 공여자(Donor)에 비해 훨씬 많이 발현됐다.(그림2) 논문을 검토한 모 교수는 “처녀생식 줄기세포에서 부계유전자가 발현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체세포복제와 처녀생식을 구분할 근거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대표적인 부계유전자인 SNRPN이 발현되지 않고, 모계유전자인 H19가 과하게 발현된 점은 오히려 NT-1이 처녀생식이라고 추정할 만한 논거지 체세포복제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만약 정 교수 등이 SNRPN을 체세포복제의 근거로 활용하려면 처녀생식 줄기세포에서는 부계유전자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처녀생식 줄기세포에서도 일부 부계유전자가 발현된다는 사실이 수많은 논문을 통해 입증됐고 학계에서는 이미 정설이 됐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난자 스스로 수정을 했음에도 아버지 쪽 유전자가 나타나더라는 뜻인데 부계유전자가 나온다고 체세포복제라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는 의미다. 처음 이 논문을 심사했던 <네이처>의 심사평 또한 이와 궤를 같이한다.(Expression of some paternally imprinted genes, presumably as a result of culture induced dysregulation, is not a surprise in parthenogenetic ESCs.)

체세포복제라면서 처녀생식 뒷받침 논거 제시
심지어 정 교수는 이 공판에서 2002년 세계 최초로 원숭이의 처녀생식 줄기세포를 수립한 시벨리 박사의 논문과 2007년 인간 처녀생식 줄기세포로 수립한 레바조바 박사 등을 인용해 “그들 역시 원숭이나 인간의 줄기세포에서 SNRPN이 발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줄기세포가 처녀생식 유래임을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고 답했다. 그 말대로 한다면 NT-1에서도 SNRPN이 발현되지 않았으니 NT-1은 처녀생식 유래가 맞다는 결론이 나온다. 대체 무슨 주장을 하겠다는 말인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그런데 원 논문의 제 1저자였던 박 박사는 2009년 이미 이 부분에서 문제제기를 했었다. 그가 황 박사와 정 교수 등에 보낸 e-메일의 내용은 이렇다.
“수정을 가해야 할 부분으로 각인 유전자의 발현과 메틸레이션 패턴에 대해서인데 우선 이 데이터들에 대한 우리의 논점이 무엇인가를 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최종본을 보면 이런 데이터들이 NT-1의 생식기전을 밝히는데 있어서 신빙성 있는 과학적 증거가 될 수 있다는 뜻인지 없다는 뜻인지, 아주 혼란스럽게 보입니다. 또한 SNRPN이 발현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최종본의 논리전개는 아쉬움이 커 보입니다.”

법정에서 정 교수가 메틸레이션 분석을 두고 한 증언도 혼란스럽다. 메틸레이션 분석은 유전자의 각인이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지를 비교해보는 검사다. 공판 당시 그는 “부계유전자 SNRPN, KCNQ 등을 공여자의 검사결과와 함께 비교해보면 NT-1이 같은 패턴으로 메틸화되었느냐”는 변호사의 질문에 “그렇다”고 증언했다. 만약 그의 말대로 공여자와 NT-1 부계유전자의 메틸레이션 패턴이 같다면 체세포 복제라는 증거로 활용할 만하다.

그러나 실제 논문에서 NT-1의 메틸레이션 분석 결과는 공여자의 것과 전혀 다른 패턴을 나타냈다.(그림3) 오히려 이들이 비판해왔던 조사위(그림4)의 발표나 김 박사의 논문과 같은 패턴이다. 그동안 황 박사 측은 이들의 논문이 공여자의 체세포를 대조군으로 이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 원장 역시 “조사위의 발표와 김 박사의 논문은 공여자의 체세포 정보(정확한 대조군)가 없기 때문에 실험조건을 제대로 갖췄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중요하다던 공여자의 메틸레이션과 NT-1의 메틸레이션 분석이 맞지 않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모 교수는 “체세포 유래가 아님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근거”라고 말했다.

제일 중요한 SNP 분석은 논문에 설명 없어
현 원장은 “일반적인 체세포라면 메틸레이션 패턴이 반반씩(모계와 부계가 함께 발현한다는 의미) 나와야 하지만 공여자부터 그렇게 나오지 않다는 점을 볼 때 염색체 상에 손실이 있었다고 보여진다”며 “이는 체세포 핵이식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 중 하나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논문에서 공여자의 염색체가 손실됐다고 판단할 만한 증거와 부작용이라는 과학적 데이터는 제시하지 않았다. 스스로 추정(presumed)이라 했던 이 염색체의 손상은 바로 다음 문장에서 증거(evidence)로 바뀐다. 아무런 실험이나 데이터도 없는 추측이 논거가 된 셈이다.

하지만 한 연구자는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면 메틸레이션 분석 당시 기술적인 문제(technical error)가 있었다고 보는 게 보통”이라며 “염색체의 이상에도 불구하고 줄기세포 발달이 되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현상이고 비정상적인 발달로 만들어진 세포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처럼 정 교수 등은 각인 검사나 메틸레이션 분석에서 처녀생식임을 입증하는 이전의 연구와 같은 결과를 제시하면서 결론은 체세포 유래라고 주장해 논리적 혼란을 가중시킨다. 그럼에도 하버드대 김기태 박사가 NT-1이 처녀생식임을 입증하는데 가장 중요한 논거로 사용했던 SNP 분석을 전혀 반박하지 못했다. 당시 김 박사는 자신의 논문에서 “NT-1에서의 유전자 이형접합(성격이 다른 두 유전자가 교차하는 현상)은 염색체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많아지는 전형적인 처녀생식 패턴을 보인다”고 밝혔다.(그림5)

그림을 보면 NT-1의 경우 접합현상이 중심절에서 멀어질수록 증가하는데 반해 H9과 같은 인간 수정란 줄기세포나 체세포 경우 거리와 관계없이 이형접합이 나타났다. 현 원장은 “김 박사의 실험은 쥐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2007년 황 박사의 의뢰를 받아 SNP 분석을 실시한 SNP제네틱스 신형두 박사도 ‘NT-1은 처녀생식 유래’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현 원장 등이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한 김 박사의 논문 은 2007년 9월 <스템 셀(stem cell)>의 표지에 실렸다. <셀(cell)>의 자매지인 <스템 셀>은 줄기세포 분야의 성과를 발표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저널이다. <스템 셀>의 인용지수는 25.94에 이르고 김 박사의 논문 인용지수는 그 두 배가 넘는 55다. 전 세계 학자들이 논문을 인용할 만큼 과학적인 검증 결과가 담겼다는 의미다.

지지자와 황 박사 측근의 후원금 공방
이번 논문 살펴본 모 교수는 “어떤 면에서 과학은 해석의 차이가 낳은 산물일 수 있지만 이 논문은 전반적으로 논리 전개가 빈약하고 과학적 논거가 부족하다”며 “NT-1이 체세포 유래임을 입증하겠다며 썼지만 오히려 처녀생식임을 강하게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황 박사가 끊임없이 NT-1의 재검증을 노리는 이유는 뭘까? 한 전문가의 지적이 꽤 설득력이 있게 들렸다.

“황 박사팀에 세계적인 수준의 동물 복제기술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가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개 복제사업은 사실상 실패했습니다. 기술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수요가 없고 수지도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제는 보여주기 용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실익은 적습니다. 진짜 큰 시장은 줄기세포입니다. 얼른 뛰어들어야 하는데 정부가 연구 허가를 안 주니 답답하겠죠. 그런데 정부가 황 박사의 복제 성과만으로 줄기세포 연구 재개를 허락할 가능성은 적습니다. 그러니 NT-1이 체세포 복제가 맞다고 증명하려 애를 쓰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재 황 박사의 공식적인 직함은 두 가지다. 수암연구원의 책임연구원과 비상장 바이오기업 에이치바이온 대표이사다. 정부가 수암연구원에 줄기세포 연구 허가를 내줄 경우 그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크다. 정부와 기업의 공식적인 연구비 지원은 물론 성과를 바탕으로 에이치바이온의 상장도 노려볼 수 있다. 반사이익이 상당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그 밖에도 <월간중앙>은 황 박사에 얽힌 불확실한 돈의 흐름도 찾았다. 황 박사의 지지자였던 김모 씨가 17억원을 후원했다는 내용이다. 황 박사의 측근인 정모 씨가 개입된 것으로 보이는데 정씨는 “근거 없는 음해”라며 일축했고, 이에 대해 김씨는 “통장 내역과 확인서 등을 공개할 수 있다”며 맞섰다. 양측이 소송을 준비할 만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관계를 떠나 정부 지원금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인 황 박사로서는 또다시 돈 문제에 얽혀드는 일이 달갑지 않다. 이 역시 황 박사의 적극적인 해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줄기세포는 난치병 치료·동물 복제·인공 혈액 등 다양한 부분에 활용할 수 있다. 부가가치가 크기 때문에 기술을 선점하려고 미국과 일본 등 전 세계가 연구력을 집중한다. 2011년 9월 이명박 대통령도 줄기세포 연구에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들어 줄기세포 연구의 무게 중심은 유도만능줄기세포(iPS)로 옮겨갔다. 2006년 야마나카 신야(Yamanaka Shinya) 교토대 교수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iPS는 다 자란 세포의 역분화를 유도해 만들어낸 만능세포다. 환자 본인의 몸에서 세포를 추출한다는 점에서 성체줄기세포와 유사하지만 배아줄기세포처럼 만능으로 분화할 수 있다. 난자를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윤리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유전자 변형에 따른 안전성 문제만 극복한다면 활용분야가 무궁무진하다.

김효수 서울대 의대 교수는 “iPS는 환자 자신의 피부나 혈액의 체세포로부터 역분화를 시켜서 확립하기 때문에 면역 거부 반응이 적어 향후 세포치료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치가 매우 크다”며 “줄기세포 연구의 트렌드가 점점 iPS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업 한국줄기세포학회 명예회장(중앙대 의대 석좌교수)은 “iPS 분야는 일본과 미국이 가장 앞서 있으나 iPS 제작이 어렵지 않고 신경세포·베타세포 등 각종 특이세포로 유도 분화시키는 연구가 계속된다면 우리나라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연구 재개도 좋지만 의혹부터 해소해야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학계의 흐름에서 황 박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지만 그가 다시 한 번 훌륭한 과학적 성과를 보여줄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NT-1이 굳이 체세포 유래가 아니라 하더라도 세계 최초의 처녀생식 줄기세포인 것은 확실하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이고, 온 국민의 기대대로 난치병 치료에 새 희망을 불어 넣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황 박사를 둘러싼 의혹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우선 논문보다 먼저 언론에 발표하는 ‘황우석’식 과학은 여전한 듯 보인다. 황 박사는 외국에서 받은 특허는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정작 국내 특허는 스스로 심사를 미루는 이유를 해명해야 한다. 제 1저자 모르게 논문의 내용을 바꾸고 허락 없이 학술지에 투고한 사실과 추정과 비논리가 수두룩한 논문의 수준도 문제다. 정 교수 등 측근들의 빈번한 과장과 불확실한 약속도 유쾌하지 않다. 돈 문제는 더욱 투명해야 한다.

이 논쟁은 황우석이란 한 과학자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 모든 과학계에 적용될 연구 윤리의 문제다. 철저한 검증이야 말로 과학자가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황 박사의 주장을 엄정하게 검증해야 할 분명한 이유다. 황 박사에게 줄기세포 연구를 승인할 것인지는 정부가 판단할 일이지만 적어도 이런 의혹들이 해소되고 난 다음이어야 한다. 줄기세포 연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학문이다. 연구자에게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적 자질과 품성을 요구해야 할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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