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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한 장... 김 배급의 추억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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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호 29면

모든 것이 다 부족하고 아껴 써야 했던 시절, 1960~70년대에는 김이 아주 맛있고 귀한 반찬이었다. 김 하나만 있으면 식탁이 풍성하게 바뀌었다. 문제는 비싸다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쌓아놓고 언제든 원하는 대로 먹는다는 건 부잣집에서나 가능했었다.

나와 김: 주영욱 마크로밀 코리아 대표

자료를 보니 1973년에 김 한 톳(100장) 가격이 550원이었다. 그해 서울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5만4000원 정도였으니 김 한 톳 사려면 월 소득의 1% 정도를 지불해야 하는 비싼 가격이었다. 이러니 일반 가정에서 김을 마음대로 먹는다는 건 꿈도 꾸기 어려웠다. 생산 기술이 빈약해 생산량도 적었고 우리 국민의 소득 수준이 워낙 낮았던 어려운 시절이었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던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이 식탁에 올라오는 건 저녁 식사 때뿐이었다. 식사 때면 아이들은 큰 김을 한 장씩 배정받아 각자 아껴서 먹어야 했다. 그래도 아버지 앞에는 김이 반듯하게 잘려 이쑤시개에 꽂혀 넉넉하게 올려지곤 했었다. 하지만 자기 몫을 먹어버린 아이들이 슬금슬금 손을 대는 바람에 결국 아버지 몫은 얼마 남지 않곤 했다.

부잣집 출신이어서 손이 크고 음식 솜씨가 좋으셨던 할머니께서는 그 귀한 김으로 가끔 김 부각을 만들곤 하셨다. 김에 찹쌀 풀을 발라가며 넉넉히 겹쳐 만드는 김 부각은 손도 많이 갔지만 김이 아주 많이 들어갔다. 맛이 좋아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었는데 자주 맛볼 수는 없었다.

이제는 김이건 김 부각이건 언제든지 원할 때 마음대로 사서 먹을 수 있는 풍족한 시절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가끔 그 시절이 그립다. 그때 먹었던 김 맛도 그리워한다. 그 시절, 그 맛에는 그렇게 어려운 시절에 우리를 키워주셨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의 사랑이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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