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매니저 쉽게 떼돈 벌던 시절 끝났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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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호 21면

자산운용업은 다른 사람의 돈을 맡아 굴리는 산업이다. 이 비즈니스는 그동안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자기자본이 거의 필요하지 않았다. 수익률이 어찌 됐든 최고 연봉을 보장받았다. 자산가치에 비례해 운용 수수료를 떼기 때문이었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새로 생긴 펀드회사 중 어느 곳도 수수료 인하를 통해 기존 업체와 경쟁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수수료 생각은 안 하고 단기 수익률이 높은 매니저만 쫓아다니는 투자자들 덕분이다. 이런 태도는 운용업이 경쟁으로부터 멀어져 수수료 담합을 하는 데 일조했다. 펀드회사들은 경쟁의 공백 상태에서 과도한 이익을 누렸다. 가히 현대 자본주의의 총아라 할 만했다.

그러나 펀드매니저가 쉽게 돈을 벌고 화려한 영광을 누리던 20년 세월은 끝났다. 현재 경제 상황은 자산운용업에 고통이다. 쉽게 벌면 쉽게 잃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구조적인 변화와 마찬가지로 운용업도 몇 년 안에 호황의 고점을 찍은 뒤 내리막길을 걸을 것이다. 거시경제 지표가 나빠졌는데도 불구하고 지난해 기록적인 숫자의 헤지펀드·외환거래펀드가 생겨났다. 마치 프랑스 대혁명의 전조 속에서도 “내 죽은 뒤 홍수가 나든 말든!” 하면서 방탕한 생활을 즐긴 루이 15세를 떠올리게 한다.

자산운용업에서 ‘홍수’의 전조는 지난해 뚜렷이 악화된 펀드수익률이다. 헤지펀드는 연평균 4.9%, 일반 주식형펀드는 2.2%의 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하반기 금융시장 불안과 펀드수익률 하락이 겹치면서 자산운용업의 수수료 담합에도 드디어 구멍이 생겼다. 대안투자 정보사이트인 핀올터너티브즈(FINalternatives)에 따르면 신규 설립된 헤지펀드의 평균 수수료는 하락세다. 지난해 9월에는 업계 표준인 총자산 대비 2%보다 낮은 1.57%까지 떨어졌다. 수익률에 비례하는 보수는 업계 표준인 20%보다 낮은 17.56%까지 떨어졌다.

자산관리 산업은 통합·축소되고 있다. 펀드매니저들은 수수료·보수를 낮춰 가며 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환경에 놓였다. 지금 당장은 금리가 낮지만 조만간 한번 다시 오를 때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펀드매니저들에게 순풍이 아니라 역풍이다. 지금까지 저금리가 자산가치를 상승시킨 덕을 봤지만, 고금리 기조에서는 자산가치가 하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잘해야 연 4% 수익률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자산의 2%를 운용 수수료로 내는 것도 모자라 수익의 20%를 운용 보수로 내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물론 뛰어난 펀드매니저는 늘 정직한 고수익을 낼 수 있다. 운용업계에도 수많은 권리 주장에 매몰되지 않고 정진하는 똑똑한 펀드매니저들이 적잖다. 그들은 운용업에 홍수가 빨리 몰려 와서 무능한 이들이 휩쓸려가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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