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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재송신 제도 개선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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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도준호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자존심 강한 오래된 연인 간의 애증관계~.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 TV의 재송신 문제를 비유한 말이다. 둘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했다. 지형상 난시청 지역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케이블 TV 방송망은 지상파 방송사의 난시청 해소 고민을 해결해 광고 수익 창출에 도움을 줬다. 한편 케이블 TV의 수많은 채널 중에서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 뉴스, 스포츠 중계 등은 시청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콘텐트였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둘은 ‘당신이 나 아니면 또 누가 있어? 내 덕으로 살고 있지’ 내심 이런 생각을 해왔다.

 위성방송과 IPTV 방송이라는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밀월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방송 콘텐트 수급 능력이 취약한 통신사가 IPTV를 운영하면서 지상파 방송사에 프로그램 사용 대가를 지불한 것이다. 그러자 지상파 방송사는 오랜 연인인 케이블 TV 사업자에게도 대가를 요구했다. 케이블 TV 사업자는 반발했고, 결국 둘 간의 다툼은 지상파 방송사업자가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정으로 옮겨간다. 법원은 지상파 방송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지난해 10월 서울고법이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지상파 방송프로그램을 재송신하는 경우 케이블TV 방송사가 하루에 5000만원씩 지상파 3사에 각각 지급하라는 간접강제 결정을 내렸다. 여기까지가 둘 간의 애틋했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게 된 스토리다.

 파국은 1월 16일에 간접강제 배상액이 100억원에 육박한 케이블 TV 방송사들이 KBS-2TV의 재송신을 중단하면서 절정을 맞았다. 1200만 명에 달하는 케이블 TV 시청자가 KBS-2TV 방송을 볼 수 없는 초유의 지상파 방송 블랙아웃이 현실화된 것이다. 둘 간의 다툼에 애꿎은 시청자들만 황당한 피해를 보았다. 공영방송에 대한 보편적 접근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시청자 복지가 무너진 것이다. 결국 쏟아지는 비난 여론 속에 28시간 만에 KBS-2TV의 재송신이 재개됐지만 현행 제도하에서는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

 사태가 악화된 이유는 제대로 된 지상파 재송신 제도가 없고, 이를 대체할 사업자 간에 게임의 룰도 없기 때문이다. 법원의 간접강제 명령 이후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 TV 방송사는 방통위의 중재 아래 대가 산정 위원회를 구성했다. 사업자 간 게임의 룰을 만드는 작업이다. 미국에서는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TV 방송사 간에 다양한 대안이 형성돼 있다. 지상파 방송사가 금전적 보상 대신에 현재 케이블 방송에서 송출되지 않는 지상파 계열사 PP를 케이블 방송사가 전송하도록 요구하거나 계열사 PP의 채널 번호 조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가 산정 위원회에서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TV 방송사들은 자신들이 내세운 논리와 재송신료만을 끝까지 고집하며 기싸움을 벌였다. 금전적 보상 이외에 다른 대안들은 찾아볼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제도개선을 서두르지 못하고, 중재 역할도 제대로 못한 방통위는 비난을 면할 수 없는 처지다. 제도 개선의 핵심 방향은 지상파 방송사의 성격을 고려하면 자명해진다. 공익성 실현과 보편적 서비스를 전제로 지상파 주파수 사용을 허가받은 공영방송은 의무재송신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즉 의무재송신 대상을 현행 KBS-1TV와 EBS에서 KBS-2TV와 MBC로 확대해야 한다. 수신료 수입이 없는 공영방송인 MBC의 경우 의무재송신하고 그 대가를 산정해 주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민간 상업방송인 SBS는 개별 계약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다.

도준호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