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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아웃사이더 반란 … 서울대·홍대 출신 83% → 4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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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해 11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 아시아 컨템포러리 이브닝 세일에 한국 작가로는 김환기(1913∼74), 김창열(83), 최소영(32) 셋이 올라갔다. 이브닝 세일은 비교적 고가의 주요작만을 엄선해 판매하는 섹션이다.

 이 셋 중 가장 젊은 ‘청바지 작가’ 최소영은 부산 동의대 출신이다. 헤진 청바지를 오려 붙여 나고 자란 부산 풍경을 묘사한 독창적 스타일로 이름을 알렸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처음 소개한 2004년 10월부터 그는 두각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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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튿날의 데이 세일까지 합해 홍콩 크리스티의 가을 경매엔 한국 미술가 22명의 작품 32점이 올랐다. 출신 학교가 다양했다. 극사실주의적 초상화로 이름난 강형구(58)는 중앙대, 실물에서 죽 늘이거나 푹 찌그러트린 모양의 조각 ‘복사집 딸내미’ 시리즈의 이환권(38)은 경원대, 우주를 닮은 원형 시점의 사진을 구성하는 주도양(36)은 동국대를 졸업했다.

 과거 미술계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던 서울대·홍익대 출신들은 9명으로 절반이 안 됐다. 홍콩 크리스티가 처음으로 한국 작가들을 경매에 올린 2004년엔 김덕용·배준성·서정국 등 6명 중 최소영을 제외한 5명이 서울대·홍악대 출신이었다. 두 대학 출신 작가의 비중이 7년 사이에 83%에서 41%로 줄었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된 작품은 국내 시장에서도 주목을 받게 된다. 국내 상업화랑 전시는 홍콩 시장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갤러리현대에서 운영하는 프로젝트 전시공간인 서울 사간동 ‘16번지’에서 지난해 전시한 작가는 강석호(서울대)·노충현(홍대)·도로시엠윤(이화여대)·김성윤(국민대)·김보민(덕성여대)·신선주(동아대) 등 14명, 서울대·홍익대 출신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 비율이 반반이었다. 더 이상 출신 학교로 한국 화단을 구분 짓는 일 자체가 무의미해진 것이다. 이유가 뭘까.

 첫째, 국제화다. 크리스티 한국사무소 신수정 실장은 “외국의 한국 미술 담당 스페셜리스트들은 한국의 대학을 잘 모를 것”이라며 “중요한 건 해당 미술가의 전시 경력 등 포트폴리오”라고 말했다.

 둘째, 시장 다각화다. 작품을 전시·판매할 공간이 많아지니, 다양한 작가를 수용할 수 있고, 이들 사이에서 작품으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다. 2007년을 전후해 국내 미술시장이 과열되면서 이미 값이 높아진 중견작가의 작품보다 젊은 작가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게 유행처럼 됐다. 미술관·화랑 및 각종 공모전에서도 젊은 작가들에게 다양하게 문호를 개방해 이들이 개성을 발휘할 기회도 급증했다.

 중앙일보가 주최하는 중앙미술대전의 경우 지난해 대상은 미국 휴스턴 라이스대 건축과를 중퇴한 쉰스터(33, 본명 신재희)가 받았다. 예선을 통과해 본 전시에 참여한 선정작가는 18명, 이 가운데 서울대·홍익대 출신은 8명으로 절반이 안 됐다. 선정작가제도를 처음 도입한 2005년의 경우엔 25명 중 13명이었다. 정준모 전 덕수궁미술관장은 “과거 미술품을 사고 판다는 개념이 없던 시절엔 명문대 미대 교수가 전시를 열면 지인이나 학부형들이 와서 구매하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셋째, 개인주의화다. 앵포르멜(Informel·무정형), 모노크롬(monochrome·단색), 민중미술 등 70∼80년대는 동문 중심의 미술 운동이 작품활동의 주무대였다. 서울옥션 최윤석 미술품경매팀장은 “과거엔 동문 중심의 미술운동, 그리고 미술운동 중심의 유파로 작품이 만들어져서 서울대·홍익대 이외의 작가들이 어딘가 변방 느낌이 났다면 오늘날 미술가들은 각개약진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세대가 달라지고 미술이 다양해졌다는 얘기다. 다만 ‘젊은 작가 시장’은 10년 뒤를 예측할 수 없고, 잘 팔리는 작가가 곧 훌륭한 작가인 것만은 아니라는 경계의 소리도 나온다. 정준모 전 관장은 “처세서·실용서 위주의 베스트셀러가 스테디셀러를 압도하지 못하듯, 시장의 인기작가가 있는가 하면 김수자·이불(홍익대)이나 서도호·양혜규(서울대), 김아타(창원대), 임민욱(파리) 등 국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미술관급 작가’도 있다”고 거리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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