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민주당 새 지도부, 수권 능력 보여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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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야권 통합 정당 민주통합당의 지도부가 선출됐다. 시민사회 세력을 대표하는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가 모바일 투표를 업고 거센 기세를 보였으나 2위에 머물렀다. ‘제2의 박원순’은 실현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제도권 정당 밖에 있던 그가 2위에 오른 건 제도권 정치에 변화의 바람이 몰아치는 또 하나의 증거다. 안철수 교수의 강력한 등장과 박원순 서울시장 탄생 후에 바람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번에 대의원·당원·시민은 전체적으로 익숙하고 안정적인 틀에서 과감한 변화를 모색하는 복합적 선택을 했다. 친노무현 핵심 중 하나인 한명숙 전 총리가 대표가 됨으로써 노무현 세력은 4년 만에 다시 정치 중심지대로 진입했다.

 경선에서 드러난 가장 큰 변화는 시민참여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시민 64만 명이 선거인단으로 등록했으며 대부분 모바일 투표를 선택했다. 총선·대선을 위해 당은 이들을 당원화하고 규모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런 개방형 경선은 당을 유권자에게 더 넓게 열면서 일반인의 정치참여와 관심도를 높였다. ‘개방형’ 당 운영은 총선·대선 과정에서도 더욱 폭넓게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도 이런 흐름에 부응해 ‘개방과 소통’은 한국 정치의 주요 과제가 되었다.

 새로운 ‘한명숙 지도부’는 역사적인 시험에 들고 있다. 유권자의 첫 번째 질문은 ‘수권(受權) 정당’의 자질일 것이다.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10년 동안 국정을 책임진 여당이었다. 그러나 이후 야당 4년 동안은 비논리적이며, 과격하고, 공동체 가치를 위협하는 노선과 투쟁을 보여왔다. 국정 책임의식보다는 반(反)이명박·한나라당 의식에 사로잡힌 측면이 많았다. 자신들의 정권에서 체결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극렬히 반대했다. 이번에 후보들은 대부분 ‘정봉주 석방’을 외쳤다. 문성근 후보 등 일부는 BBK 특검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자신들의 지난 정권이 임명한 검찰이 수사한 결과를 부정하고, 사법부의 판단마저 인정하지 않아 국가 사법체계를 위협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보편적 복지를 새로운 정강으로 채택했는데 재원조달 같은 구체적 그림은 보여주지 않고 있다.

 국정 그리고 수권이란 주장과 공격만으론 안 된다. 구체적인 재정·정책 대안이 있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일자리 창출, 양극화 해소, 복지의 합리적 확대 같은 민생 문제에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예비경선 돈봉투 의혹’을 규명하는 등 실제로 과거 정치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려는 노력도 계속해야 한다.

 민주통합당은 한국 정치사의 중요한 실험이다. 과거 야당이 재야세력을 일부 영입해 세(勢)를 확장한 사례는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기존 정당과 시민세력·한국노총이 대규모로 합친 적은 없다. 실험인 만큼 숙제가 많다. 이질적인 세력이 융합해 혁신의 시너지를 내야지 ‘강경 경쟁’에 끌려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