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유보율 높다고 투자 안 한 것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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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황인태
중앙대 경영대학 교수

해마다 재무 보고서가 공시되고 나면 언론매체와 기관·정치권에서는 우리나라 기업, 특히 대기업의 유보율이 천문학적으로 높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 원인은 현금성 자산을 그대로 보유하고 설비 투자를 적게 한 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등 부정적 시각이 많다. 그러나 이는 유보율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결과다.

 유보율(Reserve ratio)은 잉여금을 자본금으로 나눈 비율(잉여금/자본금)이다. 이는 기업이 스스로 얼마만큼의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지, 기업의 설비 확장이나 재무구조 안정을 위해 어느 정도 사내 유보가 이뤄지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지표다. 그러나 유보율 계산에 사용되는 잉여금과 자본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업 스스로 조달한 자금의 의미로서 납입자본 개념을 생각한다면 현재의 유보율은 주식발행초과금과 재평가잉여금을 고려하지 않고 자본금을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유보율이 측정하고자 하는 취지에 맞지 않는다.

 자본거래로 발생한 자본잉여금은 배당하지 못하도록 돼 있는 반면 이익잉여금은 손익거래 결과 발생한 것으로 누적이익에서 주주에게 분배된 배당금액을 차감한 것이다. 따라서 납입자본은 액면금액, 즉 자본금에다 주식발행초과금을 합한 금액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K-IFRS(한국 채택 국제회계 기준)에서도 주주 지분은 납입자본과 이익잉여금, 기타 자본요소로 구분해 자본금과 주식발행초과금 등을 합한 금액을 납입자본으로 보고 있다. 또 자산재평가법의 재평가 결과로 발생한 재평가적립금은 현금이 발생한 게 아닐 뿐 아니라 실물자본유지 개념에서 본다면 납입자본으로 봐 유보율 계산 시 납입자본에 포함해야 한다.

 회계학의 관점에서 유보율은 잉여금에서 주식발행초과금과 재평가적립금을 제외하고 자본금에 이 두 항목을 더해 계산해야 한다(잉여금-주식발행초과금-재평가적립금)/(자본금+주식발행초과금+재평가적립금). 이와 같이 변경된 유보율 산식을 적용할 경우 상장기업 평균 유보율은 824%에서 162%로 크게 감소한다. 또한 과거 10년간 유보율을 살펴보면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중기업이 가장 높고 대기업·소기업 순이다.

 유보율 산식 조정보다 더 중요한 건 유보금은 현금으로 사내에 남아 있는 게 아니라 토지·기계설비 등에 이미 투자돼 기업활동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실증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유보금 증가와 각 자산항목 증가 간의 회귀분석을 실시했다. 분석 결과 유보금은 재고자산·투자자산·유형자산 그리고 무형자산 등의 형성에 기여하고 있어 투자활동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유보금 증가는 현금성 자산 증가에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기업은 유보금·유동부채·비유동부채로 자금을 조달해 재고자산·투자자산·유형자산 그리고 무형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특히 유보금은 회수기간이 긴 투자자산과 유형자산 형성에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보금을 투자하라는 주장은 이미 투자한 자금을 다시 투자하라는 것으로 필자의 실증분석 결과를 통해 확인됐다. 유동부채와 비유동부채가 외부로부터 자금을 조달한 것을 나타낸다면 유보금은 내부에서 투자자금을 조달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고 그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보다 타당한 지표를 통한 기업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황인태 중앙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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