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좀 번 사람들 성공징표" 330만원 '출입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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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해 서울 용산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복무한 박모(23)씨는 주말마다 불쾌함을 떨칠 수 없었다. 부대 안 도로에 교통정체가 빚어질 정도로 많은 한국인이 찾아와 부대 내 호텔 레스토랑 등이 북적였기 때문이다. 부대 출입은 미군과 그 가족, 한·미 친선활동을 하는 인사 등으로 제한돼 있다. 박씨는 “고가의 외제차를 타고선 부대 입구에서 출입증을 제시하며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며 “같은 차량으로 하루에 서너 그룹의 각기 다른 사람을 태우고 들어오는 한국인 남성을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대구에 사는 김모(48)씨도 “대구 미군기지에는 부대 내 골프장 회원권이 한 장 있으면 4명까지 들어갈 수 있다”며 “대구에서 돈 좀 벌었다는 사람들은 ‘미군 캠프 오찬’을 성공의 징표로 여긴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전했다.

 미군부대 출입증이 일부 부유층 사이에 ‘특권층의 상징’으로 여겨지면서 돈을 받고 출입증을 부정 발급받도록 해준 예비역 중령 등이 적발됐다.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는 업무방해 혐의로 예비역 중령 이모(55)씨와 전 주한미군사령관 국제협력담당관 특별보좌관 이모(54)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 등은 2006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한 사람당 20만~330만원씩을 받고 출입 자격이 되지 않는 81명에게 용산 미군부대 출입증이 발급되도록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무역컨설팅 사업을 하는 예비역 중령 이씨는 한미연합사령부 근무 시절 알게 된 특별보좌관 이씨에게 출입증을 부정 발급해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힘을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알음알음으로 연락을 해왔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씨가 모두 5000여만원을 챙겼다”고 했다. 이들은 출입 기준 중 ‘좋은 이웃 프로그램(Good Neighbor Program)’을 통해 신청하면 심사 절차가 허술하다는 점을 악용했다고 경찰은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을 통해 출입증을 받은 사람들은 사업가나 의사 등 미군부대와 관련이 없는 이들”이라며 “수사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지상 기자

◆미군 부대 일반인 출입증=출입증 소지자는 부대 내 레스토랑, 라운지 등을 이용할 수 있으나 PX나 대형 마트(Commissary) 구매는 불가능하다. 범죄에 사용된 한·미 친선활동 인사 출입 추천제는 2006년부터 실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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