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나라의 미래가 걸린 한·중 FT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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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그제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를 위한 국내 절차를 개시하기로 합의했다. FTA 이야기가 나온 지 8년 만의 일이다. 보다 적극적인 쪽은 중국이다. 한국에 온 중국 지도자들은 ‘구동존이(求同存異·같은 것은 추구하고 이견은 남겨둠)’를 주문하며 조속한 FTA 착수를 요구해 왔다. 이미 중국은 아세안·대만·싱가포르 등 주변 국가들과 FTA를 고리로 중화(中華)경제권 구축을 시도한 지 오래다. 여기에 미국·유럽연합(EU)과 FTA를 맺은 한국을 끌어들이면 미·유럽시장의 우회 수출을 늘릴 수 있다는 게 중국의 계산이다.

 상대적으로 신중한 편이던 이명박 대통령도 “이제는 양국이 ‘열린 무역대국’의 길을 가야 한다”며 적극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여기에는 경제적 실익에 더해 두 가지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한·중 FTA가 중국의 일방적인 ‘평양 편들기’에 제동을 걸고, 북한의 무모한 군사도발을 억제할 것이라는 안보적 측면이다. 현 정부로선 한·중 FTA까지 체결하면, 세계 3대 시장을 아우르는 ‘경제영토 확장’정책의 완결판이란 의미를 갖는다.

 중국은 G2의 강대국이자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다. 수교 이후 20년간 경제적 분업과 보완구조는 양국에 큰 이익을 안겨주었다. 한·중 FTA가 발효되면 국내총생산(GDP)을 2.72% 증가시켜 한·미 FTA(0.56%)나 한·EU FTA(1.02%) 효과를 뛰어넘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따라서 우리가 한·중 FTA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미 FTA가 한·미 동맹을 한층 공고화한 것처럼 한·중 FTA는 한반도 안정에 강력한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한·중·일 경제공동체로 나아가려면 건너뛸 수 없는 징검다리다.

 하지만 한·중 FTA는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민감한 사안이다. 중국에서 저가의 상품이 관세 없이 쏟아져 들어오면 농수축산업과 영세 중소기업들은 엄청난 피해를 볼 게 분명하다. 직격탄을 맞는다. 또 중국은 우리가 한발 앞선 금융, 지적재산권, 서비스 분야에는 개발도상국 대우를 요구하며 개방에 난색을 표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한·중 FTA는 충분한 검토와 준비를 거친 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본격적인 협상은 차기 정부에 넘긴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현 정부가 업적주의에 사로잡혀 졸속 협상을 벌인다면 한·미 FTA 촛불집회를 능가하는 화(禍)를 남길지 모른다.

 당장 한·중 간에 높은 차원의 포괄적인 FTA를 맺는 것은 무리다. 민감성 품목은 개방 예외로 남기거나 개방 유예로 묶어두는, 낮은 차원의 FTA가 대안일 수 있다. 또한 FTA는 단순히 양국 정부 간의 협정이 아니다. 오히려 FTA는 대내(對內)협상이 90%, 대외협상이 10%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선 피해 계층의 목소리부터 충분히 듣고,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주력해야 한다. 한·중 FTA는 나라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고도의 전략 아래 차근차근 진행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