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얘기, 교실서 통하게 … 그린카드 도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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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점심시간. 새치기를 한 남학생에게 여교사가 주의를 주자 이 학생이 교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며칠 후 학교에서 징계위원회가 열렸지만 피해를 당한 여교사는 징계하지 말자고 건의했다. 문제 학생의 또 다른 난폭 행동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같은 달 서울의 한 고등학교 자율학습시간. 앞자리에 앉은 학생이 뒷자리에서 떠드는 급우에게 ‘조용히 하라’고 소리친 게 발단이 돼 싸움이 붙었다. 교사가 뒤늦게 제지했지만 한바탕 주먹다짐이 오간 뒤에야 수습됐다. 이 학교 박모(18)군은 “선생님은 있으나마나”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교실에서 교사의 권위는 크게 떨어졌다. 교사들이 폭력사건 예방과 대응을 하기는커녕 일상적인 생활지도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많은 교사가 학생지도에 손을 놓았고 일부는 학생들의 거친 행동을 그대로 방치한다. 하지만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제일 먼저 나서야 한다. 교사는 또 다른 아빠·엄마이기 때문이다. 김포 용호고 노정근(54) 교사는 “사춘기를 겪으며 부모 말은 안 들어도 선생님의 말은 귀담아 듣는 것이 아이들”이라며 “가장 오랜 시간 가까이에서 학생들을 볼 수 있는 교사들이 열정을 가져야 학교폭력을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교사들 스스로도 본지·교총 설문조사에서 ‘교사의 적극적 생활지도(35.7%)’가 학교폭력 근절의 첫 번째 해법이라고 꼽았다.

 본지는 학부모의 신뢰를 높이고 교사의 권위를 세워 적극적인 생활지도가 가능하도록 ‘그린카드’ 운동을 제안한다. 학부모의 동의를 바탕으로 교사에게 학생을 지도할 권위를 부여하자는 의미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의 서드스트리트 초등학교는 학년이 바뀔 때마다 등교 시간과 복장, 휴대전화 사용 등 학교생활에 대한 교칙이 담긴 그린카드(녹색 종이에 인쇄돼 ‘green card’라 불림)를 학부모에게 보내 서명을 받는다. 그린카드에 적힌 규율을 네 번 어기면 퇴학 조치된다. 이 학교 수지 오 교장은 “학부모가 동의한 엄격한 원칙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체벌 없이도 교사지도에 순응한다”고 말했다.

 교사의 권위를 세우는 것과 함께 교사들도 학생지도 방식을 적극적으로 배워야 한다. 특히 “덩치 큰 남학생들이 대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한 여교사(33)의 말처럼 교단의 여초(女超) 현상이 심화되면서 생활지도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서울은 초등학교 교사의 85%가 여성이다. 남자 교사가 한 명도 없는 곳이 7곳(전체 591곳), 1명인 곳은 15곳이다. 중학교는 경기(74.9%)·인천(73.8%)·부산(72.4%)·울산(71.8%)·서울(68.7%) 순으로 여교사 비율이 높았다. 10년 전 30%대였던 고교의 여교사 비율도 전국 평균 46.2%였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여교사들이 남학생들을 다루기는 물리적으로 힘들다”며 “교사 채용 과정에서 남자 교사 할당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만·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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