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연기 치솟는데 경보도 안내방송도 없는 특급호텔·영화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특급호텔·복합 영화관 등 서울의 주요 다중(多衆) 이용 시설들이 화재 발생에 따른 대피·경보 시스템에 맹점을 드러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당 시설들이 소방법에 따른 설비를 갖추고 있으나 대피 지침 등 소프트웨어는 아직 부족한 상태라고 지적하고 있다.

 4일 오후 5시16분 서울 강남의 특급호텔 별관 1층 카페 주방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배기관 먼지에 불이 붙은 것이다. 불은 출동한 소방차에 의해 진압됐다.

 문제는 당시 화재 경보가 울리지 않았고, 대피 안내방송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화재가 난 별관 3층의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하고 있던 일부 고객은 대피하지 못했다. 당시 객실에 있던 이모(67·여)씨도 “복도에 연기가 자욱하고 고무 타는 냄새가 나는데도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기는 객실이 있는 본관에도 퍼졌다. 당시 6층에 묵고 있던 30대 남성은 “객실에 연기가 찼는데도 대피 지시가 없었다”고 말했다. 호텔 측은 “갑자기 경보가 울리면 고객들이 당황할 우려가 있어 자동화재탐지설비를 수동으로 설정했다. 별관에서 난 화재여서 본관 객실은 안전하다고 판단해 별도의 대피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7일 오후 3시30분 서울 송파구의 한 복합 영화관 상영실에서 전기합선으로 인해 영사기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타는 냄새가 객석에 퍼지면서 관객들이 대피했다. 하지만 영화관에서는 경보를 울리지 않았고 화재 신고도 하지 않았다. 영화관 측은 “불이 난 것은 아니었다”며 “상영관 안으로 연기가 퍼지지 않아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선진국에서는 화재가 나면 그 규모를 판단하기에 앞서 경보를 울린 뒤 대피시키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한다. 우송대 인세진(소방방재학) 교수는 “작은 화재라도 연기로 인해 질식할 수 있으므로 신속히 대피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명대 정기신(소방방재학) 교수는 “대형 건물에 반드시 두도록 돼 있는 소방안전관리자 등 책임자의 주도로 화재가 일어난 층과 바로 위층이라도 우선 대피시켰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정봉·위문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