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 리코더 분 27세 권민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권민석씨

17년 동안 리코더를 분 ‘한 남자’가 있다. 리코더를 불러 네덜란드로 유학을 갔다는 부분에선 ‘헛웃음’이 나올지도 모른다.

 리코더리스트 권민석(27)씨가 사연의 주인공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실기시험을 위해 잠깐 불고 평생을 머리 속에서 지우고 살지 모르는 리코더를 배우기 위해 2006년 유학을 떠났다.

 장난으로 여기는 시선도 많았다. 하지만 2009년 세계적인 리코더 콩쿠르인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우승까지 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네덜란드에 있는 권씨와 지난 2일 전화 인터뷰를 했다.

 -한국 사람들은 리코더를 만만한 악기로 여긴다.

 “(오히려) 좋은 것 같다. 부담이 없으니까. 클래식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리코더는 친근하다. 덕분에 리코더로 주로 연주하는 바로크 음악까지 친근하게 다가가는 장점이 있다.”

 권씨가 연주하는 리코더는 흔히 알고 있는 플라스틱 리코더보다 1.5배 정도 크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나무로 만들어졌다. 바로크 시대 알토 리코더를 복원한 것으로 회양목(淮陽木)으로 만든 것이다. 하나에 300만원 정도다. 불면 나무의 울림이 생겨 플라스틱 리코더보다 맑고 깊은 소리가 난다.

 -주로 어떤 곡을 연주하나.

 “바로크시대 목관악기 곡들은 대부분 리코더곡이라고 보면 된다. 소나타는 200개 이상, 협주곡은 40곡 이상이 있다. 리코더 음역은 3옥타브 정도로 바로크 음악은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1960~70년대 유럽에 고음악이 유행하면서 현대 작곡가들도 리코더 곡을 많이 만들었다. 실내악이나 르네상스 음악도 연주한다.”

 권씨의 아버지는 물리학자다. 그는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를 따라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가슴 속의 보석을 찾아라”라는 대사가 가슴을 울려 리코더 연주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부모님이 반대했다. 의지를 보여드리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음악으로 도피한다’는 말은 듣기 싫었다. 반에서 1등, 전교 5등까지 성적을 올렸다. 성적이 오르니 부모님께서 더 반대하시더라. (웃음)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대 음대를 둘 다 붙었다. 그래도 몬트리올 콩쿠르 우승하기 전까지는 불안해하셨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리코더를 잘 몰라서 힘들었다.”

 권씨는 26일 서울 종로구 금호아트홀에서 독주회를 연다. 클래식계 샛별들을 모아 공연을 열어주는 금호아트홀의 ‘라이징 스타’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그는 이날 “리코더로 장난치지 말라”는 편견의 벽을 훌쩍 뛰어넘을 생각이다.

강기헌·류정화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