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佛작가 김순기 〈주식거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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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모니터로 만든 네개의 높은 기둥에 두채의 연결된 판잣집이 올라 앉았다.

모니터에는 일상적 장면들이 쉴새 없이 나타난다. 어린아이들이 마음대로 붙인 신문과 잡지로 된 판잣집은 전시장의 천장과 벽면에 무작위로 이미지를 쏘아대고 있다.

집의 벽면 모니터에는 일본의 닛케이 주식거래소와 다우존스, 유로 50, 코스닥의 주식지수가 한시간 단위로 들어오며 이에 맞춰 음악도 흘러나온다.

제목은 '주식거래'.

주식의 오르내림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비정한 테크놀로지의 반영물, 또 다른 '대자연'으로 진화해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을 표현했다.

서구 멀티미디어 아트의 국제적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대규모 기획전이 열린다. 아트선재센터에서 9월2일부터 10월 22일까지 열리는 재불(在佛)작가 김순기(54)의 〈주식거래 株式去來〉전이다.

최근작으로 꾸민 이번 전시는 감상 자체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관객을 생각에 잠기게 하는 작품들로 꾸며져 있다.

미술관 계단 벽에 설치되는 '견우와 직녀'. 플라스틱으로 제작한 태극기와 인공기가 15m 떨어져 마주보고 있는 가운데에 가로 70㎝, 세로·높이 60㎝의 양철 케이블카가 서 있다.

케이블카 옆면에는 한반도 지도가, 뚜껑에는 태양열 전지가 부착돼 있다. 원래는 태양전지 동력으로 왕복하는 것이지만 빛이 부족해 정지해 있다. 대신 야외에서 햇빛을 받고 왕복하는 모습을 벽에 설치된 TV모니터가 보여준다. 통일과 교류협력은 실내에서 완결되지 못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복권동네'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프랑스의 즉석복권들로 예쁘장한 집들을 만들어 보여준다. 우리가 느끼는 일상의 삶 속에서의 행복과 안온함이 '꽝'난 복권으로 이뤄진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 복권은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허망한 자본주의의 무너진 꿈이지만 이것으로 만들어진 집은 여전히 아름답다.

센터 한옥관에선 영상작품 '존 케이지와 이애주'를 보여준다. 존 케이지가 김순기를 위해 만든 음악이 흘러나오고 무용가 이애주와 동물들의 춤이 조선백자위에 영사되는 작품이다.

'얼음비디오'는 개막일에만 선보이는 작품. TV모니터 형태를 얼음으로 떠놓고 그것이 실온에서 녹아 없어져 버리는 과정을 작품화했다. 비디오는 '빈 그릇'이며 관객이 감상하는 시간 자체가 비디오라는 개념이다.

관객이 프로젝터를 밀고 다니면서 아무 벽에나 쏘며 놀 수 있게 한 애니메이션 게임 '꽃밭'도 있다.

전시장 입구에는 '표준 시력 검사표'가 붙어 있다. 작은 글자들은 원래가 판독불가능한 상형문자다. 이 역설적인 검사표는 눈과 마음을 청소하고 감상을 시작하라는 의도를 담고 있다.

비디오 작업을 하면서 1년간 쓰레기통에 쌓인 먼지들을 모아서 만든 작품 '알레아'(우연이라는 뜻의 라틴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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