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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칼럼

북한의 사무라이 규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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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고이케 유리코
일본 자민당 총무회장·전 방위상

지난해 12월 19일 북한은 ‘경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현지지도 중 야전열차 안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지배권력은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에게 이양됐다. 세계의 이목은 과연 김정은이 실질적으로 나라의 진짜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에 쏠린다.

 김정일은 그의 부친이자 북한 창업주인 김일성으로부터 지배권력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역사는 부자간의 순조로운 세습이 규칙이라기보다 이례적이란 걸 보여준다. 13세기 일본 가마쿠라 막부 시기 미나모토 사네토모가 3대 쇼군(將軍)에 올랐을 때 그의 나이는 12세였다. 실질 권력은 1대 쇼군의 며느리 호조 마사코와 그의 친정 호조 가문이 장악했다. 사무라이 사회를 이끌기에 사네토모는 너무 어리고 미숙했다. 전투 경험과 나이로 정당성을 가늠하는 숙련된 사무라이들이 실전 경험이 전무한 애송이의 명령을 달가워할 리 없었다.

 중국에도 유사 사례가 있다. 겨우 세 살 때 청 왕조 11대 황제로 등극한 광서제는 서태후의 섭정을 받았다. 1908년 자금성에 유폐돼 숨을 거둘 때까지 황제는 서태후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이 같은 섭정 통치의 선례들은 이제 평양에서 펼쳐질 권력 승계 투쟁을 짐작하게 해준다. 27세(북한은 29세라고 주장) 김정은은 전투 경험이 전무한 땅딸막한 애송이일 뿐이다. 상당수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북한군 내 노장들이 풋내기 ‘종이 장군’에게 충성을 다할지 의심스럽다.

 사실 말년의 김정일은 건강 악화로 직접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의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 김경희가 대신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사망 전에 최고 권력의 이중 구조가 평양에 드리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경희와 그의 남편 장성택에게 이목이 쏠린다. 북한의 차기 권력구도를 짐작할 수 있는 김정일 장의위원 명단을 보면 232명 가운데 첫 번째가 김정은이고, 김경희가 14번째, 장성택이 19번째다. 지난해 9월 김경희는 김정은과 나란히 인민군 대장으로 승격했다. 김경희는 조선노동당 정치국 위원이기도 하다. 장성택은 지난해 6월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승진하면서 정치국 후보위원 자격도 유지했다.

 65세 김경희는 김일성과 김정숙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김경희가 네 살 때 사망했다. 계모와 이복동생들 틈바구니에서 김경희는 완고한 성격으로 자라났다. 김정일은 “(내 동생 경희는) 한번 화가 나면 누구도 말릴 수 없고, 나조차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표면적인 후계자 김정은의 막후에서 김경희는 실질 권력을 틀어쥘 것이다. 그는 질투가 많고 승부 근성도 대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일본과 중국 역사를 돌아보면 사네토모는 끝내 암살당하고 호조가 권력을 잡았지만 가마쿠라 쇼군 시대는 그로써 끝이었다. 서태후가 죽은 지 3년 후 신해혁명이 일어나 청 왕조가 막을 내렸다.

 물론 21세기 북한은 가마쿠라 시기 일본도 아니고 청조 중국도 아니다. 그럼에도 역사와 이런 비교는 교훈적이다. 경제적 후진성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인터넷과 휴대전화는 확산되고 있다. 국경 부근에선 통제와 검열을 피해 정보를 주고받는 일이 허다하다. 각종 소식을 실은 삐라 풍선이 지금도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이런 흐름이 계속될수록 역사의 전례는 한층 강력하게 메아리칠 것이다. 어쩌면 북한 혁명이 멀지 않았을지 모른다. 북한의 노장들과 김씨 왕조의 결탁이 느슨해진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고이케 유리코 일본 자민당 총무회장·전 방위상
정리=강혜란 기자 ⓒ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