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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금융위기 부른 은행권력, 제퍼슨은 일찍이 예견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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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위험한 은행
사이먼 존슨·곽유신 지음
김선희 옮김, 로그인
352쪽, 1만8000원

‘올드 히코리(Old Hickory)’.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의 별명이다. 히코리는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자라는 단단한 나무로 지팡이 재료로 쓰였다. 타협할 줄 모르는 완고한 성격의 잭슨에 딱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당시 원시적 중앙은행 역할을 하던 제2합중국은행과의 싸움으로 별명은 더욱 확고해졌다.

 20년 기한의 제2합중국은행에 대해 인가 갱신 논란이 벌어진 1830년대, 잭슨은 단호히 반대했다. 그러자 은행 측은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주(州) 은행에 빌려준 융자를 갚으라며 독촉하기 시작했다. 금리는 두 배로 올렸다. 잭슨에 대한 반대여론을 불러일으키려고 경제왜곡까지 서슴지 않은 것이다. 은행은 의원들을 매수해 잭슨에 반대하도록 했다. 금융권력이 정치권력을 조종한 것이다. 하지만 잭슨은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이 역사적인 대결의 뿌리는 220년 전 토머스 제퍼슨 당시 국무장관과 알렉산더 해밀턴 재무장관의 대결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외교사가 개입주의와 고립주의의 변주곡이라면 미국 금융사는 제퍼슨과 해밀턴의 팽팽한 대결사이기 때문이다.

제퍼슨은 탈중앙집권적 제도와 농업사회를 신봉했다. 반면 은행제도를 혐오했다. 상비군제보다 더 위험한 것이 은행이라고 믿었다. 해밀턴은 제퍼슨의 생각에 반대했다. 경제발전을 촉진하려면 더 강력한 연방정부와 은행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두 사람의 대결은 일단 해밀턴의 승리로 끝났다.

‘월가 점령 시위대’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미국의 대형은행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참극이라고 주장한다. 금융권의 탐욕을 질타하는 월가 시위대가 16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월가의 황소상을 조롱하는 ‘황금 송아지’상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워싱턴 AFP=연합뉴스]

 제1합중국은행은 해밀턴 주장대로 기능을 수행했다. 정부의 수입과 지출을 관리했다. 미국을 상공업이 번창하는 나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제퍼슨의 후계자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대형은행을 향한 제퍼슨의 우려는 폄하할 수 없는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제퍼슨처럼 이런 금융의 권력화를 간파하고 저지했다. 20세기 초 테오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산업트러스트에 대항했다. 1930년대 대공황 때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 대통령은 은행들을 해체했다. 3명의 대통령이 대변하는 제퍼슨주의적 전통은 고삐 풀린 막강한 금융시스템이 번영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했다.

 『위험한 은행』저자 사이먼 존슨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대학원 교수와 곽유신 코네티컷주립대 교수는 미국 금융의 역사를 민주주의와의 대결이라는 맥락에서 거시적으로 설명한다.

제퍼슨과 3명의 대통령이 우려했던 것처럼, 또 오늘날 피켓과 지팡이를 든 월가 점령시위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대형은행이 권력화하며 재주를 부리다 만든 참극이 바로 2008년의 금융위기라는 것이다. 은행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며 유리한 사업환경을 조성해온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금융은 좋은 것이고, 규제받지 않는 금융은 더 좋은 것이며, 금융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 게 미국에도 좋은 것이라는 이데올로기 말이다. 또 “초대형 은행을 작은 은행으로 개편해야 한다”며 다소 급진적인 해결책을 내놓는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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