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프리여자배구] 왜 하필 겐팅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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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의 겐팅은 도시가 아니다.

겐팅 하이랜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수도 콸라룸푸르로부터 40㎞ 떨어진 해발 1천800m에 위치한 놀이공원과 카지노, 호텔시설을 갖춘 리조트단지일 뿐이다.

휴양지인 만큼 당연히 주민들은 없고 숙소에서 생활하는 종업원들과 공사장 인부, 가족 단위 혹은 해외여행패키지로 방문한 인접국들의 단체 관광객이 겐팅에서 접할 수 있는 부류의 사람들 전부이다.

희한한 것은 태국의 얄라나 필리핀의 마닐라처럼 도시가 아닌 이곳에서 2년째 세계여자배구의 강호들이 참가하는 그랑프리세계여자배구대회가 열린다는 점이다.

주최국인 말레이시아 배구대표팀이 출전하는 것도 아니요, 종목이 그네들의 인기 스포츠인 배드민턴이나 축구도 아니어서 일부러 찾아오는 팬들도 별로 없어보이는데 말이다.

게다가 경기장은 체육전용의 실내체육관과 거리가 먼 연중 서커스와 라이브공연이 열리는 대중극장이다.

그런데 왜 국제배구연맹(FIVB)은 여자배구 최고의 국제 상금대회를 이곳에서 열고 겐팅은 대회를 유치하려 했을까.

며칠째 한국 선수단을 괴롭힌 이 물음의 정답은 뜻밖에도 '관광'이었다.

유럽이나 남미, 혹은 아시아 선진 경제국보다 대회 경비가 적게드는 도시를 물색하던 대회 주관사의 이익과 다양한 관광프로그램 개발에 골몰하는 말레이시아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겐팅의 입장에서 보면 놀고 있는 공연장과 호텔을 싼 값에 내주는 대신 각국 선수단을 유치하면서 부대수익을 올릴 수 있고 주말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이벤트를 제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더운 곳도 아닌데 주요 경기시간을 밤 9시(현지시간)로 결정한 것도 알고보면 관광객들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한 배려인 듯 싶다.

국제대회조차 관광상품으로 바라보는 말레이시아인들의 모습에서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겐팅<말레이시아>=연합뉴스) 유경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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