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유훈통치’도 결국 선군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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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자 노동신문 1면 사설.

북한이 22일 김정은 체제의 김정일 유훈(遺訓)통치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의 ‘위대한 김정일 동지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심장 속에 영생하실 것이다’는 사설을 통해서다. 북한은 통상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국정 방향과 주요 정책을 제시해 왔다. 신문은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지켜 주체혁명, 선군혁명의 길을 꿋꿋이 걸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지도자는 바뀌었어도 통치방식이나 과업은 그대로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유훈통치의 핵심은 선군(先軍)정치다. 사설에는 선군영도, 선군혁명, 선군조선 등 ‘선군’이 21번 등장했다. 김정은과 관련한 내용의 첫 언급도 ‘김정은 동지의 선군영도’다. 전문가들은 예정된 수순이란 의견이다. 고려대 유호열(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의 정당성은 김정일에게서 나온다”며 “선군정치에 기반한 유훈통치를 공식 선언하며 당분간 김정일의 통치 틀 내에서 국정을 총괄해 나가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성국가’는 모두 11차례 언급됐다. 김일성 100회 생일을 맞는 내년에 강성대국의 첫걸음을 내딛겠다는 김정일의 의지의 연장이다.

 김정일의 공식 조문기간 중임에도 김정은의 영도를 강조한 부분도 눈에 띈다. 1만1000자가 넘는 장문의 사설을 통해 김정일의 업적을 선전하는 부분과 김정은 체제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내용을 병렬로 나열했다. “김정은 동지의 두리(주변)에 단결하고 단결하고 또 단결하며 그이의 영도를 충직하게 받들어 나가야 한다”는 등의 표현이 대표적이다.

 이는 1994년 김일성 사망 때 사설 내용의 대부분을 업적 칭송에 할애했던 것과 다르다. 김정은으로의 권력이동에 속도를 내는 것이다.

권호 기자

◆선군(先軍)정치=군을 우선하는 북한의 통치방식. 1998년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취임과 함께 등장한 북한의 기본적 통치방식이다. 군의 영향력을 정치와 경제뿐 아니라 교육·문화·예술 등에 이르기까지 북한 사회의 전 영역에 투영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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