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왕따 학생의 손,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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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양 손에 책을 잔뜩 들고 뱅뱅 돌며 안절부절못하던 D여고 1학년 여학생은 결국 옥상으로 향하는 버튼을 눌렀다. 지난 20일부터 인터넷에서 퍼지고 있는 여고생의 투신 자살 직전 동영상은 충격적이다. 비슷한 시기 대구 D중 2학년생은 자신의 목을 전깃줄로 묶고 괴롭히는 친구들을 묘사한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투신해 우리를 섬뜩하게 했다. 비극적인 두 사건 모두 교실에 만연해 있는 집단 따돌림(왕따)에서 비롯됐다.

 전국 3분의 1 학교에 배치돼 있는 전문 상담 교사들이 이 두 학교엔 없었다고 한다. D여고에서는 이 학생이 반장과 함께 담임교사에게 찾아가 왕따 고민을 털어놓았으나 도움이 필요한 그 순간 충분한 구제를 받지 못했다. D중의 피해 학생은 보복이 두려워 부모나 교사에게 알리지 못했다고 하니 한 인격을 파멸로 몰아가는 따돌림의 심각성은 이처럼 중대하다. 게다가 정글처럼 변한 학교 교실에서 갈수록 거칠어 가는 학생들을 다루는 교사들은 힘에 부친다. 따뜻한 시선이 닿지 못하는 그늘에서 한 해 150명 가까운 학생들이 목숨을 내던지고 있다.

 이 문제는 담임 교사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운다고 풀리는 게 아니다. 네티즌들이 가해자들의 신상 정보를 인터넷에 올려 화풀이를 한다고 해결되는 건 더더욱 아니다. 결국 고민에 빠진 학생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적절한 구호조치를 받을 수 있는 학교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도 이중 삼중으로 짜여야 한다. 가급적 모든 학교에 상담 교사를 배치하되 예산상 어렵다면 영국이나 프랑스 학교처럼 학부모들이 상담사로 나서 그 빈 곳을 메워주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전국 시·군·구 178곳에 있는 교육지원청도 상담 전문가들을 모아 학내 왕따와 전쟁을 벌이는 학교를 도와줘야 한다. 피해 학생들이 스마트폰 등을 통해 피해를 신고하거나 위치정보를 남겨 도움을 즉시 받게 한 교육과학기술부의 방안도 적절하다. 위험에 빠진 학생들이 손을 뻗는 그곳에 누군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