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아이들과 함께하는 점심식사, ‘기부 설렁탕’ 한 그릇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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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한 듯한 기분이네요.”

지난 13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 테크노벨리에 위치한 무선통신장비 제조업체 쏠리테크의 구내식당. 점심으로 설렁탕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운 이 회사 정준(48)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정 대표가 먹은 설렁탕은 음식값 중 일부가 아프리카 아동 급식비로 자동지원되는 ‘기부 메뉴(사진)’였기 때문이다. 이 기부식단제는 쏠리테크가 사회적기업 ‘테이블포투(Table For Two·두 사람을 위한 식탁)’와 협약을 맺고 이달부터 도입한 것이다.

테이블포투는 4년 전 일본에서 시작된 사회적기업 성격의 비영리 단체다. ‘영양과잉으로 건강에 문제까지 생길 정도인 선진국 사람들의 칼로리를 영양실조로 고통 받고 있는 곳으로 보내자’는 다소 엉뚱한 아이디어가 출발점이었다. 학교나 회사의 구내식당과 협약을 맺어 일반식보다 칼로리를 좀 줄인 ‘테이블포투’ 메뉴 하나를 식단에 넣고, 그걸 먹을 경우 음식값 중 300원(일본은 20엔, 미국은 25센트)을 아프리카 아이들 후원금으로 내도록 만드는 것이다. 300원은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 금액이다. 일본과 미국·홍콩 등에서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테이블포투는 올해 1월 한국에 지부를 설립했다. 쏠리테크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테이블포투 메뉴를 구내식당에 도입한 기업이다.

쏠리테크의 경우 구내식당 점심 메뉴 3개 가운데 테이블포투 메뉴로 지정된 설렁탕을 선택하면 음식값 중 300원이 아프리카 초등학생들의 급식비로 지원된다. 정 대표는 “회사 차원에서 큰 돈을 기부하지 않더라도 개인이 각자 기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라며 “직원들도 그 의미를 알고 많이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구내식당의 양현진(36·여)점장은 음식의 질은 유지하면서 재료비에서 300원을 줄이기 위해 메뉴 선정부터 고민했다. 양 점장은 “설렁탕처럼 국물이 있는 메뉴는 대개 칼로리가 적정량보다 높은 편이어서 건강에도 좋지 않다”며 “국물의 양을 줄이고 반찬을 한가지 빼면서 칼로리를 좀 줄이니 재료비도 절감돼 기부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편 테이블포투는 이날 쏠리테크의 구내식당에 기부와 사회공헌에 관심 있는 다른 기업 관계자 20여명을 초대해 점심식사를 겸한 설명회를 가졌다. 설명회에 참석한 삼성생명의 배양숙(46·여)FC명예사업부장은 “기업이 직원들에게 기부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간다”며 “회사 구내식당에 제안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 테이블포투의 이지현(43·여)대표는 “쏠리테크를 시작으로 많은 기업들이 좋은 뜻에 동참했으면 좋겠다”며 “한국에 알맞은 형태의 테이블포투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예지 행복동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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