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꿈ㆍ사랑…그리고 고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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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할 수 없는 것을 욕심내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마흔도 훨씬 넘은 사내가 그처럼 순결하고 아리따운 것을 탐내다니."

작가 한용환(韓龍煥.57)씨가 장편 〈산타루치아역에서 돌아보다〉(민미디어刊)를 최근 펴냈다.

1970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한씨는〈조철씨의 어떤 행복한 아침〉. 〈햇빛과 비애〉. 〈패자의 눈〉등의 작품집과 함께 84년 소설문학상등을 수상하며 주요 작가군의 일원으로 꼽혔으나 40대 접어들며 창작활동을 중단했다.

이 추잡한 세상, 특히 80년대의 위악적인 정치 상황과 위선적인 지식사회에서 소설로 순결하고 아리따운 세상을 꿈꾸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것마냥 사라졌던 한씨는 이 작품으로 15년여만에 독자곁으로 돌아왔다.

〈산타루치아역에서 돌아보다〉는 40대 후반 유부남 교수와 20대 중반 처녀의 사랑을 지상에서는 결코 소유할 수 없을 정도로 순결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사회와 가정의 버팀목으로서의 40대의 남은 꿈과 사회적 고독을 아프게 담아내고 있다.

작가의 분신인듯한 소설가이자 대학교수인 주인공 준호는 대기업 사보기자로 갓 입사한 미혜를 원고 관계로 만나 급속하게 가까와진다.

20여년을 훌쩍 뛰어넘어 청춘을 되찾은듯한 기쁨에 전율하면서도 그 나이 차이로 결코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려는 것은 자신의 추악한 욕심 아니냐는 자의식에 떨던 준호는 교환교수 명분으로 1년간 파리로 떠난다.

미혜를 지우려 파리에서 박물관과 카페, 극장가를 돌아다니며 소일하던 준호는 그럴수록 미혜에 대한 간절함이 더해진다.

미혜 또한 그런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파리로 날아와 15일간 중부 유럽의 아름다운 풍광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내다 헤어진다는 것이 이 작품의 겉 줄거리다.

그러나 40대의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는 고독과 반항이 그 속이야기를 꽉 채우며 이 작품을 흔한 사랑 이야기로 흐르지 않게하고 있다.

한번도 불의와 악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비겁하게 눈치보고 영합하며 살아내야하는 자괴감. '영광은 보장되고 위험은 해소된' 민주화 서명운동 등에 끼어드는 지식인의 몰염치. 옛 애인, 그 순수한 추억의 부름에도 응할 수 없이 족쇄처럼 돼가는 부부관계 등에 대한 비판적 반성이 작품의 속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여기에 대한 탈출구, 그리고 청년 시절의 꿈과 사랑의 피난처로 택한 곳이 파리다.

학창 시절 혹독한 생활 속에서도 글로 읽고 동경해왔던 이탈리아와 스위스 접경에 위치한 꼬모호.

그 호수가에서 순정한 영육의 일치를 경험한 준호와 미혜는 그곳에서 그대로 머물다 함께 죽고싶었으나 미혜는 서울로 돌아간다.

그리고 준호도 1년을 다 마치면 현실로 돌아갈 것이다. 이렇게 누추하고 허무한 것이 현실적 삶이지만 이 작품은 청년기의 순수한 꿈과 사랑을 아득히 환기시키면서 삶을 여전히 깊고 살맛나게 만든다. 이것이 한씨가 지향하는 소설, 문학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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