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분석] 포스트 김정일 시대, 북핵 어떻게 되나?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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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김정일 시대에 국제사회의 가장 큰 관심사는 북핵 문제다. 김정일이 사라진 북한은 핵 협상에 어떤 자세로 나서게 될까. 최근 보여준 대화 재개 움직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핵화에 획기적인 움직임을 보이진 않을 듯 하다. 오히려 지위가 완전치 않은 후계자 김정은이 핵 실험이나 군사 도발로 자신의 입지를 증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향후 행보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근거는 17년 전 김일성 주석 사망 때 보여준 북한 당국의 태도다. 1994년 7월 김 주석이 숨졌을 때는 1차 북핵 위기로 긴장감이 고조됐던 시기다. 하지만 북한은 김일성 사후 한 달만에 영변 핵시설 동결과 관련한 북미 대화를 재개했다. 그리고 10월 핵시설 대신 경수로 원전을 건설한다는 북미 제네바 합의를 이뤄냈다. 북한은 합의의 대가로, 중유·쌀 등 식량지원을 얻어냈다. 이런 성과는 김정일 체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는 뉴욕 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김정일이 아버지를 대체했을 때처럼 미국은 물론 한국 등과 대결 구도를 만들길 꺼릴 것”이라며 “후계자 김정은은 시간을 벌기 위해 미국과의 긴장 관계를 줄이고 6자회담 재개 등을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이 식량 지원을 받기 위해 미국에 영변 농축우라늄 시설 가동을 중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AP통신의 보도가 김정일 사망 발표 전날인 지난 18일 나오기도 했다.

결국 북한은 최고지도자 사망으로 인한 혼란과 김정은 체제의 안착을 위해 미국과의 대화 자체를 버리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장례식 등을 위해 일정 기간 대외 접촉을 삼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향후 협상에 나서 시간을 벌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당장 6자회담 재개를 위해 22~23일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북·미 3차 대화의 실현 여부가 북한의 대외관계 입장을 보여주는 첫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같은 ‘통 큰 결단’은 힘들어=그러나 향후 북한이 협상에 나선다고 해도 협상에 큰 진전이 있을 지는 의문이다. 김일성이 사망하기 전 약 20년 동안 후계자 수업을 받으며 권력을 다진 김정일과 달리 후계자로 나선 지 1년여 밖에 안 된 김정은은 아버지 같은 ‘통 큰 결단’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브루스 클링너 미 해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은 파이낸셜 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일은 핵 협상 또는 체제 개혁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며 “이것이 없는 김정은은 외세의 영향을 꺼리는 내부 세력의 비판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김정일 사망으로 불안해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보루로 핵·미사일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이룬 지 9년 만에 경수로 건설을 중단하고 2006년과 2009년 두차례 핵실험을 하며 꾸준히 핵 개발을 진행해왔다.

김정은이 군부 등 내부 정치세력의 지지를 위해 강경한 태도나 군사적 도발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안보연구소의 짐 월시 박사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군부 신뢰를 받지 못한 젊은 지도자이기에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며 “이는 북미, 한미 관계가 위험한 국면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고 전망했다.

결국 핵문제와 관련한 모든 변화는 결국 김정은 체제가 안정돼 얼마나 내부 세력을 통제하느냐에 달려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북한은 군부와 관료들에 의한 집단지도 체제로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며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 과정에서 생기는 잡음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상황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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