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의 마켓뷰] 유럽 위기 + 김정일 사망 … 당분간 변동성 큰 박스권 장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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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김정일이 사망했다. 1994년 그의 아버지인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는 시장의 영향이 크지 않았다. 당시에는 경기가 좋은 상황이었다. 김정일이라는 확실한 후계체제도 있었다. 주식시장은 북한의 체제 변화를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좀 다를 수 있다. 향후 구도는 집단지도체제 가능성을 포함해 1인 중심의 독재체제에서 변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결국 사망 원인부터 향후 구도까지 불확실성 해소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어쨌든 단기적으로 외환·주식 등 금융시장의 충격은 불가피해 보인다. 또 이번 일은 유로 재정위기 확산 가능성이 커지는 시점에 발생해 시장에 부담이 더 크다. 신용평가사가 프랑스·이탈리아 등 주요 유로 국가들의 신용등급을 낮출 것이라는 소문에 유럽 문제에 대한 공포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김정일 사망 소식까지 겹치니 일단 주식을 팔고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최근 이탈리아 2년 국채 금리는 7%를 넘었다가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5.3%다. 이탈리아의 국채 만기를 보면 2월 574억 유로를 비롯해 2월부터 4월까지 3개월 동안 1542억 유로가 몰려 있다. 다가오는 이탈리아 위기는 이번 유럽 재정위기의 변곡점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 유로 3위, 세계 8위의 이탈리아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이탈리아 국채가 불안해진다면 그것은 곧바로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주요 은행의 위기로 확산할 것이다.

 이번 위기는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유동성 함정 위기다. 각국에서 돈을 풀어도 부실해진 금융기관이 자본 확충을 해야 하고, 거기에 돈이 계속 잠기면서 그것이 국가 재정을 더 부실하게 하는 유동성 함정의 악순환이다. 이제 이탈리아에서 심지어 프랑스까지 부실 국가로 만들 수 있는 위기에 처해 있다. 결국 경제적으로 보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탈리아 국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비용을 치를 것인가, 아니면 이탈리아 위기 확산 이후 그 국채에 대한 손실 처리에 따라 금융기관의 자본 확충과 타 국가로의 전이를 막는 데 들어가는 대가를 지불할 것인가. 당연히 돈을 적게 푸는 것을 선호한다고 보면 독일과 미국의 선택은 이탈리아 국채 위기의 조기 해결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ECB)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이 단순히 돈을 풀어 이탈리아 국채를 사주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면 오히려 이탈리아의 부실을 증명하게 되는 꼴이다. 결국 이탈리아가 계획대로 재정감축으로 장기적인 재정균형을 가져오는 방안을 채택해 실천하고, 국제사회가 이를 지지해 그 방안에 대해 신뢰를 얻는 게 중요하다. 이탈리아 국채 금리가 연 5~6%라는 건 역설적으로 신뢰의 문제가 해결되면 매력적인 투자자산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신뢰의 문제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탈리아 국채 만기 부담과 김정일 사망까지 당분간은 공포와 합리적 이성 사이에서 변동성이 큰 박스권 장세가 불가피해 보인다.

조용준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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