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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월요인터뷰] 일본 전·현직 판사가 말하는 ‘판사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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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나카무라 마코토(左), 기타니 아키라(右)

“재판관(판사)도 정치적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왜 굳이 자신이 재판관이란 사실을 밝혀야 합니까. (의견 표명은) 익명으로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일본 도쿄에서 전·현직 판사들을 만났다. 최고재판소 사무총국 비서과장(한국의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 해당·지방재판소 부장판사급) 나카무라 마코토(50·中村愼), 그리고 37년간 판사 생활을 한 뒤 현재 호세이(法政)대학 로스쿨 교수로 있는 기타니 아키라(74·木谷明). 이들에게 판사의 정치적 의견 표명 문제와 정년퇴직 때까지 판사로 일하는 평생법관 시스템에 관해 물었다. 인터뷰 과정에서 이들은 기자의 질문에 “왜 한국 판사들은 중도에 그만두느냐”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아선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기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국과 일본 법조계 문화의 괴리는 그만큼 컸다. 먼저 나카무라 부장판사에게 일본 법원의 현황부터 물었다.

 - 판사가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데 있어 어떤 제한을 하고 있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 관한 일반적인 법 규정은 있지만 재판관에 대한 별도의 규정은 없다. 규정이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중립적으로 공정성을 지키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 일본 판사들은 정치적 주제를 놓고 서로 의견 교환을 하지 않나.

 “술자리 같은 곳에서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수는 있겠지만 모임을 만들거나 대외적으로 의견 표명을 하는 경우는 없다. 판사들이 개별적으로 메일을 주고받는지는 모르지만 외부·내부 게시판에서 의견을 개진하며 논쟁한 적은 없었다.”

 - 일본 판사들이 정치에 관심 없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웃으며) 나름대로 생각은 있겠지만 대외적으로 발표한다면 중립성과 공정성, 그리고 ‘공정스러움’을 의심받게 될 것이다. 판사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고, 일반 게시판에 실명 대신 익명으로 자기 의견을 올릴 수도 있지 않으냐. 왜 굳이 자신이 재판관이란 사실을 밝혀야 하느냐.”

 - 판사들도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사용하나.

 “대부분 취미나 동호회, 육아 등 개인적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SNS를 통해 특정 사건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거나 정치성 중립성을 의심받을 소지가 있는 글을 인터넷에 띄우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안다.”

 기타니 교수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1963년 판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70년대 일본 판사 사회를 뒤흔들었던 ‘청법협(청년법률가협회)’ 사건을 직접 체험했던 세대에 속한다.

 - 일본 판사 사회에서도 ‘청법협’ 등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있었는데.

 “당시 최고재판소(대법원)에서 청법협 소속 판사보를 판사 임용에서 탈락시켰다. 구체적인 탈락 사유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불안해하는 분위기였다. 재판에 관한 연구모임이었는데 자민당 우파(보수파)에게 찍혀 공격의 표적이 됐다.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 특정 정당의 총리나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건 아니었나.

 “아니다. 이후에 ‘재판관 네트워크’ 등 판사 모임이 논란이 된 적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재판 방식 등을 바꾸자는 것이 주된 논의 주제였다. 이념적 갈등은 아니었다. 남북이 대치하는 한국 상황과는 좀 다른 것 같다.”

 - 판사들이 SNS를 통해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자신의 의견을 SNS에 쓰면 구체적인 사건을 맡게 됐을 때 자기 발언에 구속될 수 있다. 한쪽 편에 서 있다는 비판을 받게 되고, 특정 그룹에는 어떤 사건에 대해 어떻게 판결을 할 것이란 기대감을 주게 된다.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변절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판사 자신은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법정에 들어간다’고 해도 100%의 신뢰를 받기는 어렵다.”

 이들에게 또 한 가지 물은 것은 평생법관 시스템이었다. 지난 9월 취임한 양승태 대법원장은 평생법관제를 위한 법관 인사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양 대법원장은 “평생법관제가 정착돼야 ‘전관예우’ 논란도 없앨 수 있다”는 소신을 피력해왔다. 나카무라 부장판사에게 판사로 일하다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판사 30년차까지를 기준으로 할 때 사법연수소(사법연수원) 동기 100명 중 15명꼴로 그만둔다. 10년간 판사보를 할 때 5명 전후가 그만두고 이후 10년~30년차 사이에 10명 이하가 퇴직한다.”

 - 어리석은 질문일지 모르겠으나 일본 판사들은 왜 정년 때까지 근무하나.

 “오히려 왜 중도에 그만둬야 하는지 되묻고 싶다. 재판 업무에 매력을 느껴 평생 직업으로 판사의 길을 택한 것 아닌가. 물론 지방 전근도 가야 하고, 보수 역시 잘나가는 변호사와 비교해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일반 공무원에 비하면 보수가 많은 편이고, 사치를 부리지 않는다면 생활이 곤란할 정도는 아니다.”

 - 고등재판소 부장판사가 되지 못하면 승진에서 누락됐다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닌가.

 “고등재판소가 위에 있긴 하지만 판사들은 오히려 ‘지방재판소 쪽이 훨씬 재미있다’고 여긴다. 1심 재판은 분쟁을 법적으로 어떻게 정리할지를 당사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제로에서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지방재판소 부장은 대개 45~46세에서 50대 후반까지로 경험과 분별력이 있고, 체력도 뒷받침되는 시기다. 가장 열심히 일할 때다.”

 이때 나카무라 부장판사는 불쑥 “질문이 하나 있다”고 했다. “한국 판사들이 변호사 개업을 하면 어떤 메리트(이익)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순간 기자의 말문이 막혔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판사 생활만 24년 한 나로서는 24년간 변호사로 활동한 (사법연수소) 동기들과 경쟁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쉰 넘어서 변호사가 되는 건 너무 늦다. 한국 사람들은 판사를 그만두면 현직에 있는 동료들이 도와줄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아닌지 궁금하다.”

 - 한국 법조계에는 ‘전관예우’라는 말이 있다. 일본은 어떤가.

 “우리 쪽에는 그런 말 자체가 없다. 판사를 오래 했다는 것만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타니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기자가 한국 판사들의 조기 퇴직 현상을 전하자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고 표현했다.

 “변호사를 하면 일의 성질이 180도 바뀌게 된다. 특히 형사사건에서는 판사로서 얻은 노하우가 변호사로 개업했을 때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 한국 판사들은 20년 정도 판사를 하다가 나가는 경우가 많다.

 “판사 20년차쯤은 돼야 판사 경험이 축적됐다고 할 수 있다. 참치로 치면 가장 기름이 많을 때다. 나도 그 시점을 지나서야 비로소 재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었고, 충실한 판사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좋은 재판이 가능해지는 시기에 그만둔다는 건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다.”

도쿄=권석천 기자

◆나카무라 마코토 ▶최고재판소 조사관(재판연구관) ▶도쿄지방재판소부 총괄판사(부장판사) ▶최고재판소 사무총국 비서과장

◆기타니 아키라 ▶미토(水戶)지방재판소 소장(법원장) ▶도쿄 고등재판소부 총괄판사(부장판사) ▶호세이(法政)대 로스쿨 교수(형사법)

◆일본 판사=지방재판소와 고등재판소 판사 정년은 65세. 최고재판소 판사의 정년이 70세다. 판사보로 10년간 일한 뒤 판사로 정식 임용된다. 이후 10년 단위로 재임용 절차를 거친다. 한국 판사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보수 수준이 높고 관사가 제공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대부분 판사직에 있다 정년을 맞는다. 우리나라 판사는 1990년 이후 퇴직자 1519명 가운데 20명(1.3%)만 정년퇴임했다.

◆일본 청법협=1954년 창립된 진보 성향 법률가 모임인 ‘청년법률가협회’의 약칭. 60년대 교사 노조활동 등에 대한 진보적 판결이 잇따르면서 자민당 정권의 공격 대상이 됐다. 최고재판소는 70년대 들어 판사들에게 탈퇴 압력을 가하며 회원인 판사보를 판사 임용에서 탈락시켰다. 당시 이시다 가즈토(石田和外) 최고재판소 장관은 “판사가 정치적 활동을 하는 단체와 관련을 맺으면 아무리 공정해도 오해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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