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에 다 못 넣겠네, 자격증 50개 고3 김도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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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내방동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을 찾은 윤정현 교사가 이곳에서 실습 중인 김도현군과 자동차 정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도현아, 실습이 어떠니?”

 “책으로만 보다가 직접 만지며 배우니 재미있어요.”

 15일 광주광역시 서구 내방동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이곳에서 실습 중인 김도현(18·전남 장흥실업고 자동차과3)군에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1학년 때부터 3년간 담임을 맡은 윤정현(51) 교사다. 김군은 고교 3년간 공인 자격증 50개를 딴 ‘자격증 왕(王)’. 이전까지 37개였던 고교생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김군이 자격증을 따기 시작한 것은 1학년 때 윤 교사를 만난 게 결정적이었다.

 “처음엔 한두 개만 딸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학력을 뛰어넘어 실력을 입증하려면 자격증이 최고라 하셨어요.”

 김군이 취득한 자격증은 컴퓨터와 자동차, 건설기계 등 3개 분야다. 모두 취업과 직장 생활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것들이다. 2009년 6월 정보기술자격시험(ITQ) 자격증을 시작으로 2년6개월간 용접기능사·자동차정비기능사·건설기계 정비기능사·천장크레인 운전기능사 등의 국가기술 자격증과 국제자격증을 줄줄이 땄다. 자동차학과 과정에 있는 자격증은 모두 손안에 넣었다.

50개의 자격증을 따는 동안 대부분 이론·실기를 봤지만, 실패한 건 4∼5번뿐. 윤 교사는 “신문 스크랩과 자료를 보여주며 취업·진학에 도움이 되는 사례를 소개해준 것이 성취감을 자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윤 교사는 2008년 보성실고에 근무할 때도 자동차학과 학생 40명이 각종 자격증 460개를 따도록 지도해 주목을 받았다.

 김군의 별명은 ‘독종’. 과묵한 성격에 한번 마음먹으면 무섭게 집중한다. 그는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시켰지만 남들 놀 때 책 한번 더 보고, 실습을 한번 더 했다”고 말했다. 115명의 입학생 중 1등이었던 김군은 3년 내내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오전 7시30분이면 학교에 도착해 오후 11시까지 자격증과 학과 공부에 매달렸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철이 일찍 들었다. 중학교 성적도 좋았지만 일찍 사회에 나가 돈을 벌겠다며 전문계고에 진학했다. 그는 “아버지(54)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며 “할머니(83)와 어머니(51)를 생각해 대학보다는 취업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고비도 있었다. 어른도 어렵다는 용접기능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할 때가 그랬다. 실습할 곳이 없어 광주에서 한 달간 교육을 받았다. 김군은 “전문지식이 없어 이론과 실기 모두 힘들었다”며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지만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겨냈다”고 말했다. 1회에 5만∼10만원 하는 응시비용을 마련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선생님들이 도와줬고, 아르바이트로 보탰다.

 김군은 꿈이 많다. 자동차 회사에 취직해 자신이 설계한 차를 만들고 싶어 한다. 건설회사에 들어가 굴착기·지게차 등 중장비 전문가로 일하고도 싶다. 내년 2월 졸업 후 취직할지, 건설기계 자격증을 살려 군 기술병으로 지원할지 결정할 계획이다. 윤 교사는 “도현이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제2, 제3의 도현이’를 꿈꾸며 자동차학과에 진학하려는 학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유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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