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역사 조롱’ 출제에 학교는 뭐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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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최근 경기도 구리의 한 사립중학교 국사 교사가 낸 시험 문제에서 우리 근·현대사는 철저히 조롱 당했다. 이 학교 중학생들은 ‘교회장로입니다. 대표적인 친미주의자입니다. 친일파와 손잡았습니다. 정적을 정치적 타살했다는 비난을 듣고 있습니다. 북한을 자극해 결국 도발하도록 조장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사고 있습니다.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니까 경찰을 앞세워서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그러다가 권좌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해외로 망명하더니 그곳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됩니다’라는 예문의 정답을 ‘이승만 대통령’으로 골라야 했다. 문제를 낸 이 학교 교사는 자기 제자들에게만 이승만 대통령을 비웃음거리로 삼은 게 아니다. 직접 트위터를 통해 출제 문제 사진도 띄우고 “분명히 답을 말해줬는데도 이명박이라 쓰는 애들이 있다”는 글을 올렸다. “현직 대통령은 현재까지는 (정답이) 아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젊어서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며, 광복 후 공산주의와 맞서 남한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고, 북한의 남침에 맞서 국권을 지켜온 과정은 누구나 인정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교사들이 수업에 참고하는 학습지도 자료에도 담겨 있는 내용이다. 게다가 중국과 구(舊)소련의 기밀 문서를 통해 6·25전쟁의 발발 원인 역시 김일성의 남침 야욕 때문이라는 건 이제 상식에 속한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사료를 접하게 하고, 이를 통해 균형 잡힌 사고와 판단을 내리게 하는 게 교사의 기본 아닌가. 이런 수준 이하 교사 밑에서 배운 학생들이 우리 역사에 침을 뱉는 자학(自虐)사관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봐 걱정스러울 뿐이다. 더구나 트위터에 올린 내용을 보면 현직 대통령을 조롱하도록 학생들을 부추겼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사실 이런 편향 문제는 학교가 교과협의회를 제대로 가동만 했어도 걸러질 수 있었다. 교사들이 수업 내용이나 출제 문제를 상호 점검하는 기구인데도 지금껏 형식적으로 운영했다는 방증이다. 교육 당국은 역사과목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하는데 그치면 안 된다. 균형 잡힌 수업이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 협의회가 실질적으로 운영되도록 점검해야 한다.